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지하련 2024. 1. 13. 13:38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마을 사람들과 같은 익명의 마을 사람 A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현재 한국 언론사에 근무하는 이들 대부분이 이 익명의 마을 사람 A라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이 성명을 발표하지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제 언론사 넘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익명의 마을 사람 A가 되었으니까. 야당 대표의 목을 정확하게 겨누고 칼을 휘두른 사람을 보호하려는 듯한 경찰의 태도를 보며, 이 나라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극단주의가 우리 사회를 물들일 것이다. 이미 기독교 극단주의는 이단을 넘어 강력한 여론 단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선량하고 신중한 사람들은 더욱더 외톨이가 될 것이며, 오해를 얻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우리의 굳건한 신념을 무너뜨릴 것이며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것이다.

 

따뜻한 겨울은 형용모순이지만, 그런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겨울이 이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얀 입김이 나오지 않는 겨울 말이다.

 

종각역에 나와 광화문역을 향해 걸어갔다. 인구가 줄어들기도 했고 기업들마다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터라, 많이 붐비지 않았다. 새로 생긴 빌딩 앞에서 천리교 사람들이 포교 활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현대에선 보기 드문 다신교 국가인 일본에서 그 세를 유지하고 있는 종교. 불교 종파로 받아들이지도 하지만, 기존 불교 종파들에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한 천리교. 한 쪽에선 빅데이터를 기반한 AI가, 한 쪽에선 종교들이, 특히 극단주의로 무장한 종교들이 피를 불러 들이고 있는 2024년 1월. 지구도 나름대로 지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바닷물의 흐름을 바꾸고 대기 흐름을 조정하고 있는 이 때, 인간들은 그 특유의 오만함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가끔 세상이 무섭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으면 그게 그렇게 또 싫다.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회의 시간까진 한 시간이 남았고 코로나 시기 미국의 어느 편집자는 미국 내 여성 작가들에게 '혼자Alone'에 대한 글을 청탁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모인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남자 작가들에게 그런 글을 청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당히 재미없거나 너무 거창하거나 또는 비밀스러운 취미들로 채워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예상은 어긋났다. 여성 편집자가 기획한 이 책 초반부에는 여성 작가들만 나왔다. 나는 너무 쉽게 여성 작가들에게만 원고 청탁을 했다고 여겼다. 이것도 편견일까. 후반부에는 남성 작가들이 등장해 '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냥 비슷비슷하다. 재미없지도, 거창하지도, 비밀스러운 취미도 없다. 아쉽다.)

 

걱정스러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이제 본격적인 사춘기, 황량하기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준비 중이고 아내는 끝없는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었다. 나는, 나는, 도망치듯 나와 혼자 있고 싶다고 중얼거리지만, 실은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