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팔레스타인 비극사

지하련 2024. 5. 13. 08:16

 

 


1948년 3월 10일 쌀쌀한 수요일 오후에 이 건물(*화이트하우스)에서 베테랑 시온주의 지도자들과 젊은 유대인 군 장교들로 이루어진 11인 그룹이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ethnic cleansing를 위한 계획을 마지막으로 손질했다. 그 날 저녁, 팔레스타인인들을 이 나라의 광대한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쫓아낼 준비를 하라는 군사명령이 현장에 있는 각급부대에 전해졌다. (7쪽)

 

홀로코스트 이후 대규모 반인도적 범죄를 갖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특히 전자 매체가 급증한 이래로 통신 중심의 현대 세계에서는 인간이 저지른 어떤 재앙도 대중의 눈을 피해 숨기거나 잡아뗄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범죄 하나가 전 세계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졌다. 1948년 이스라엘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추방은 그렇게 지워졌다. 팔레스타인 땅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 사건은 그 뒤 체계적으로 부정되었고, 지금도 도덕적, 정치적으로 직시해야 할 범죄로 인정받기는커녕 역사적 사실로도 인정되지 않았다. (9쪽)

 

시온주의/이스라엘의 판본은 현지 주민들이 <자진해서> 떠났다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nakbah, 즉 <재앙>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16쪽)

 

이 책에서 나는 1948년 종족 청소의 작동 과정 뿐만 아니라 1948년에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자행한 범죄를 세계로 하여금 잊게 하고, 가해자들이 부종할 수 있게 한 인식체계까지 탐구하고자 한다. (14쪽)

 

일란 파페Ilan Pappe의 <<팔레스타인 비극사>>는 절판이었다. 이젠 예전만큼 읽지도 않고 인구가 줄기도 했고 그러니 좋은 책이라도 쉽게 절판된다. 하지만 살다가보면 궁금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를 해결하려면 책만큼 좋은 것도 없다. 검색을 통해 알 수도 있지만 그건 단편적인 지식일 뿐, 어떤 체계를 갖춘 지식은 아니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행하는 짓을 잔악하기 그지 없다(하마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왜 저들은 저기 저 땅에 온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찌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유럽의,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정착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영국이 유대 민족에게 약속했다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버젓이 유대인과 거의 같은 사마리아 인 계열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흔적을 찾아간 책이 <<팔레스타인 비극사>>이다.

 

이스라엘이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하는 탓에, 한국에 사는 나마저도 중세나 근대 유럽 사회가 왜 그렇게 유대인들을 싫어했는지, 왜 게토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될 지경이다. 나는 이토록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타인들을, 타민족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최근 미국 대학생들이 반-이스라엘 시위를 하고 있는데, 미국 사회의 복잡성, 그리고 한계를 보게 된다. 미국의 유대인 문제는 우리 상상한 것 이상으로 더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20세기 초반 세계 경제 헤게모니가 유럽(특히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것이라 추정되지만. 찾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