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칼의 노래 - 10점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김훈(지음),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내 몸 속에, 내 가슴 속에 죽여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소설의 짧고 단단한 문장들 틈 속에서 소리죽여 울어야만했다. 하지만 죽여야할 것들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내 몸 속, 내 가슴 속에서 날 공격했고, 소설 속 화자인 이순신이 죽여간 왜며, 부하며, 조선포로며, 전과를 말해주기 위해 짤려져, 소금에 절여진 머리통 위로 내 얼굴이 떠올랐다.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로 젖는구나

젊은 왜가 칼에 새겨놓은 저 글귀는 이내 내 영혼을 파고들고, 나를 버려도 내 육체를 버리지못함이 한없이 슬프고 내 몸짓들의 까닭없는 부정들이 날 공포 속으로 밀어붙인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짧게 소설가 김 훈에 대해서 생각했고 조금 길게 이순신에 대해 생각했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피로 물드는 전쟁과 인생의 무의미함과 사랑, 그 아득한 적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답이란 없었고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요점이 흘려지고 인생은 미궁 속으로 빠져 헤매이게 된다. 그러니 말은 짧고 수사는 최대한 억제해야만 한다. 그러면 요점은 분명해지고 인생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분명한 요점은 무엇이며 제 갈 길을 가는 인생이란 과연 무얼까.

이 소설 속의 이순신의 독백 사이로 김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앞만 쳐다보고 가는 문장들. 그래서 베어지고 억제되고 간결해지면서 스무살 처녀의 몸매처럼 아름답지만 까닭 없이 슬퍼지는 건, 왜 앞으로 가는가에 대해 이순신도 모르고 김훈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울었다. 내 가슴 속 죽여야할 적들을 죽이지 못함을, 이 소설은 함께 울어주었다.



Comment +2

  • 전에 검색을 하던 중... 지하련님이 칼의 노래에 대한 서평을 쓰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부러 읽지 않았습니다. 지하련님의 글에 압도될까봐요 ^^;; 그래서 제 서평을 쓰고 와서 읽었습니다. 먼저 읽지 않길 잘 했습니다 ^^

    저도 소설을 읽으며 이순신 장군과 김훈 작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김훈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을 한 것 같네요. 일년쯤 지나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입니다.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형태의 삶 Vie des Formes 앙리 포시용 Henri Focillon (지음), 강영주(옮김), 학고재, 2001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책은 책을 따라간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원제는 <Revenge of the Lawn>이지만, <잔디밭의 복수>.....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하룬 파로키 Harun Farocki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룬 파로키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Harun Parocki -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 6, 7 전시실 및 미디어랩 국립현대미술.....

회화의 이해, 리오넬로 벤투리

회화의 이해 Pour Comprendre La Peinture (Painting and Painters) 리오넬로 벤투리 Lionello Venturi (지음), 정진국(옮김).....

어지러진 자취방 구석에 놓인 낡은 턴테이블 위로 레코드판을 올릴 때,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뱉었다. 맥주를 한 잔 마셨고 짐 모리슨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시절이 있.....

초격차, 권오현
추억은 술을 마시고
추억은 술을 마시고
라틴어수업, 한동일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