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스노볼 드라이브, 조예은

지하련 2024. 7. 24. 13:19

 

 

 

스노볼 드라이브

조예은(지음), 민음사 

 

 

대학 때의 소설창작수업이 떠올랐다. 한 번은 유명일간지의 신춘문예 등단 소설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때 국내 최고의 소설가였던 담당 교수는 그 당선작이 얼마나 많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지적했다. 소설의 기본부터 새로 닦아야된다고 말했지만, 그 당선작의 작가는 지금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논리적 완결성 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요즘 국내 작가들이 누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너무 많다). 가끔 이렇게 손에 닿으면 읽게 된다. 스노볼 드라이브. 그렇게 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 소설의 설정, 방부제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하얀 괴설이 내리는 설정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과감한 설정이며,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무수한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작가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실제 그런 눈이 내리면 야생동물들은 다 죽을 것이고 강물이나 바다도 그 피해가 심각할 것이며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인데 말이다. 농사는 어떻게 짓을 것인가? 토양은 이미 황폐화되었을 테고 농작물 뿐만 아니라 수산물도 구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 버린다. 

 

대신 이야기성에 집중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과 그들의 행동에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죽었을지도 모르는 이모를 찾아 떠나는 결말은 상당히 신선했다. 하지만 이모를 찾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아니면 이모가 죽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면, 또는 계속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며 그 두 소녀도 천천히 지쳐가며 이모는 끝내 찾지 못하는 것으로 끝날까. 그런데 왜 찾아 떠나는 건가. 결말로 보자면, 이 소설은 괴설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가 이 소설의 주제처럼 보이지만, 딱히 그런 것같지도 않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냥 재미로만 읽기에는 소설이 감당하기 어려운 설정과 사건들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딱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하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제 소설이 경쟁해야 되는 미디어는 예전과 다르며, 소설을 읽는 독자도 달라졌다. 나같은 사람이나, 이런 식으로 소설을 평가할 뿐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깝고 아쉬웠다. 소설가는 이 소설을 추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문학평론가가 이 소설을 추천하는 글을 잠시 읽다가 덮었다. 이 소설은 SF소설도 아니고 미스테리 스릴러도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좋아하는 이유는 저 지겹게 내리는, 너무도 위험한 하얀 눈 속에서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두 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소년소녀들은 이유없이 앞을 향해 달려나가기 마련이다. 아니면 이미 다 자란 우리가 찾지 못하는 이유가 있던지.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의 전체적인 설정은 그냥 아무렇게나 툭 던져놓은, 작위적인 무대 같았다. 그래서 한편으론 소설이 너무 쉽게 쓰여지는 시대구나 하는 아쉬움이, 한편으로는 소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씁쓰리했다.

 

 

사족) 다 적고 보니, 그냥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덧붙인다. 아마 저 괴이한 설정이 아니라면, 그냥 이렇게도 평가할 수 있을 것같기도 하고. 어차피 해석에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테니. 아마 이 소설을 읽고 좋았던 이들은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스노볼 드라이브>>는 부모가 사라진 세대의 성장 소설이다. 부모가 죽거나 무관심하다. 또는 부모도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하지만, 그래서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인생 옆에서 대화를 할 수 있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아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녀는 눈이 멀고 있으며, 결국엔 사고로 행방불명이 된다. 모루, 이월, 두 소녀는 끝없이 괴이한, 흰 눈같이 생긴 알갱이가 쉼없이 내리는 세상에 남겨진 채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이모 유진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어차피 답이 없는 세상이고 삶의 방향이나 이정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어떤 희망의 흔적, 생명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소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 이유는 고개 숙이지 않기 때문이다.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헤쳐나간다.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독자는 두 소녀 앞에서, 그녀들을 지지하며 애정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 결말이 밝거나 어둡거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지할 필요가 있듯이 어린 두 소녀를 응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은 여기에 있다. 

 

이렇게 적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많은 장점들이 더 많은 단점들로 가려진 소설이다. 그러니 쉽게 씌여진 소설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나같은 이가 소설을 읽으면 이렇게 적으니. 리뷰를 쓰는 나도 불편하구나. 사정이 이러니, 나에게 소설 쓰기는 너무 힘든 것일게다.

 

 

소설가 조예은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