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지음), 곽광수(옮김), 민음사
Trahit sua quemque voluptas.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의해 드러난다.
- 베르길리우스(232쪽)
‘친애하는 마르쿠스여’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병상에 누운 로마 황제의 회고록이다. 전체적으로 애잔하고 슬픈 분위기 속에서,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을 지녔던 어느 노년의 담담한 목소리로 채워지는 소설이다.
나에게 나의 삶이 너무나 범속하여 기록으로 남겨질만한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소라도 오랫동안 관조될 만한 가치조차 없고, 심지어 나 자신의 눈에도 어느 누구의 삶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유일한 것으로 보이고, 바로 그 사실로써, 대다수의 인간들의 경험으로 환원될 수 없기에 무가치하고 무용한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아무것도 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 나의 미덕과 악덕들이 그러기에는 결코 충분치 않다. 나의 행복이 나의 삶을 더 잘 설명하지만, 그러나 지속적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그럴 뿐이며, 특히 수학할 만한 이유도 없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우연의 손에 받아들여짐을, 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신도 주재하지 않는 운의 덧없는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삶의 일부분은, 심지어 그 삶이 주목할 가치가 아주 없는 것일이지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출발점을, 근원을 찾는 데에 흘려 보낸다.(49쪽)
이제 1권만 읽은 상태이니, 소설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긴 무리가 있겠지만, 최고 권력자였던 어느 남자, 문학을 사랑하며 철학을 숭상하며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바라보며 행동하던 어떤 이가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의 어조나 분위기, 그가 겪었던 모험담이나 전투, 정치 암투 등 일반인은 경험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긴장 속에서의 견뎌온 일들을 하나하나 묘사하고 설명하는 말투에서 독자를 무엇과 만나게 될까.
내가 최초로 나의 주치의에게 나의 가슴 위의 심장 자리를 붉은 잉크로 표시하도록 한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 만약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면, 나는 결코 산 채로 루시우스 키에투스의 수중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인접한 지방들과 섬들을 평정하는 어려운 과업이 나의 직위의 다른 임무들에 첨가되었지만, 그러나 낮 동안의 기진케 하는 일은 불면의 긴 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53쪽)
로마황제 세 명 중 두 명은 암살당하거나 전장에서 죽었다. 아마 하드리아누스도 황제가 되지 못했다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적들을 황제가 된 이후 처리하는데, 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역사소설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작가는 마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묘사하며 설명하고 문장을 이어나간다.
한없이 기나긴 6일간을 나는,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가느다란 판자들로 만든 긴 커튼으로 바깥의 더위에서 보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끓는 가마솥 같은 법원 건물 안에서 보냈다. 밤이면 엄청나게 큰 모기들이 램프들 주위에서 앵앵대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들이 언제나 가장 현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결코 가장 순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다. (169쪽)
아직 1권만 읽은 터라, 전체적인 소설이 어떻다고 말할 처지는 안 되지만, 번역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곽광수 교수는 일부러 이렇게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로마 제국의, 뒤늦게 재조명된,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철학과 문학, 예술을 숭상했던 어느 노(老) 황제의 목소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넷 서점의 리뷰들을 보니, 누군가가 번역에 대해 이야기했고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기에 덧붙인다. 나는 도리어 이 정도로 번역하기까지의 곽광수 교수의 노고가 느껴졌다.
이제 몇 달 후 2권까지 다 읽고 길게 소감을 적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