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K에게

지하련 2003. 5. 27. 22:05
참 오랫만이군요. 언제였던가요. 제가 K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꽤 오래 전 제가 환기미술관 근처에서 살 때였지요. 그 때 컴퓨터로 쓰고 그 편지를 프린트해서 빨간 수성펜으로 수정하고 다시 쓰고, 그걸 PC 통신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글을 써서 그걸 프린트해 수정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은 종종 사무실에서 벌어지죠. 잔뜩 작성해놓은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프린트해서 수정하는.

  어느 새 밤은 내리고 거리는 불빛과 허무로 가득찹니다. 창 건너편으로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이 보이고 그 새 제 나이는 서른 하나가 되었군요.

  환기미술관 근처에 가지 않은 것도 벌써 이 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미술관에 간 것이라곤 5번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이 절 울린 문학작품은 한 두 개 있을까요. 제 인생이 하찮아지는 것만큼 제가 마주 하는 것들도 따라서 하찮아지는 모양입니다.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적 삶의 화가가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당신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현대적 삶이란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우리 영혼과 가까이 있고 진실스러운 것이라 할 지라도 말이죠.

  오늘은 그만 두어야할 것같습니다. 사무실에서 글쓰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죠. 도시는 지쳐가고 세상은 어두운 터널을 향해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