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피악(FIAC, The Foire Internationle d'Art Contemporain)이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와 루브르에서 열렸다. 하지만 바쁜 일정 탓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KIAF)를 이틀 연속 방문해 모든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본 것과 비교한다면, 이번 피악 방문은 너무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피악이 열리고 있는 그랑 팔레(Grand Palais) 정문. 지난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 곳 그랑 팔레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내의 전시 장소(Cour Carree Du Louvre), 튈리즈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서 열렸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공간의 특성 상, 작품 하나하나에 주위를 기울이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 번 본 작품은 다시 한 번 더 봐야 하고, 구입하였을 때는 그 작품이 실제로 놓이는 공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아트페어에서는 이런 고려를 할 틈이 없다. 마음에 드는 작품인데, 가격까지 흡족하다면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해외의 몇몇 갤러리들은 자신의 고객들에게 아트페어 참여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원하는 작품들을 그 때 경제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고객이 원할 때 무조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트페어라는 행사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랑 팔레의 유리 천정 아래로 가을 파리의 햇살이 밀려들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가끔 그림자가 생겨 작품 위로 올라올 때만 제외하곤 전시장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피악이 열리기 전 런던에서는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미술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런던의 아트페어를 건너뛰고 뉴욕의 몇몇 갤러리들이 곧장 피악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프리즈 보다는 피악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VIP 프리뷰 때에는 영화 배우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LVMH 회장 등 명명이 자자한 대형 콜렉터들과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관계자들이 참여하였다고 전해진다(데니스 호퍼가 유명한 콜렉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도 많은 미술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얼마 전 경매를 통해 자신의 모든 작품을 팔아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문적인 안목으로 모은 작품들이 아닌 탓에 그의 배우로서의 명성에 비한다면 그가 모은 작품들의 수준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 눈을 사로잡은 풍경화 하나. 온통 녹색임에도 불구하고 힘있고 간결한 터치와 구도는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런, 데이빗 호크니의 2008년도 작품이었다. 역시 대가는 틀리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작년에 비해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터라, 피악에 대한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피악의 결과는? 몇몇 뉴스들을 살펴보니,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거품이 끼인 듯, 호황을 구가하던 최근 미술 시장 분위기 속에서 진짜 작품을 찾으러 다니는 콜렉터들이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따져 묻는 그들의 태도에서 일부 관계자는 미술 시장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국내 미술 시장이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소 논쟁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삼가 해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피악에 나온 조각이나 설치 작품들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미술 시장 내에서 소화시키는 그들의 수준은 매우 부러웠다. 미술 작품은 다시 시장에 팔려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보면서 즐기고 감상하기 위함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돈 되는 작품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많은 작품들을 보고 감상하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되는 어떤 것이다. 혹시 며칠 간의 여유가 된다면, 해외의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꼭 가보길 권한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작품들의 가격은 어떤지, 그렇게 자신의 예술 경험을 늘리다 보면, 작품 보는 눈이 생기게 될 것이다.
Lionel Esteve의 2008년도 작품이다. 돌을 올려놓은 것같지만, 돌에다 금빛의 플라스틱 소재를 붙여놓았다. 돌이 가지는 자연적 속성은 이 플라스틱 소재로 인해 다소 무뎌지면서 인공적인 느낌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테이블 위의 돌을 보았을 때의 시각적 즐거움은 꽤 좋았다. 골판지에다 아무렇게 그려놓은 듯한 이 작품은 그랑팔레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을 바로 사로잡는다. 누구인가 하고 살펴보았더니, 타피에스였다. 장 미셸 아틀랑의 작품이다.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추상 화가로 프랑스 내에서는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는 1913년도에 태어나1960년도에 죽는다. 이번 피악에 나온 작품들은 20세기 전반기의 작품들이었다. 제작된 지도 이미 50년 이상 지난 작품들인 셈이다. 따지자면 이 정도는 약과다. 다른 프랑스 갤러리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 중 한 명인 키르히너의 1910년대 작품을 내놓기도 했으며, 다른 갤러리에서는 에밀 놀데의 20세기 초반 작품들을 무더기로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Fiac에 갔다온 흔적. 입장료는 25유로, 카타로그는 35유로,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Fiac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카타로그를 20유로에 온라인 판매를 한다고 한다. 거의 팔리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너무 비싸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