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마케팅

미술 작품의 가격

지하련 2008. 12. 9. 12:15


한국은 아직까지도 호당 가격제가 유지되고 있다. 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아직도 이것이 통용되는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편의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가격제가 매우 비상식적이라는 사실을 알만한 젊은 작가들조차도 '내 작품은 호당 10만원이니까, 100호는 천만원이야'라고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이유는 미술 작품의 가격 책정에 대해 작가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꼭 판도라의 상자 같다고나 할까.

예술 작품의 가치는 추상적이고 비계량적 가치다. 하지만 시장 가격(market price)는 수치로 나오는 계량적 가치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다. 예술 작품이 실용적인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니고 오직 감각의 즐거움, 지적 향유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주식의 가치를 매기기 위해 재무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분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어쩌면 예술 작품에 있어서 시장 가격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예술 작품의 진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일 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지금 몇 천만원을 호가하고 구하지 못해 안달난 작가들 작품들 중에, 10년 후, 또는 20년 후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그냥 묻힐 작가들의 작품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이것이 내 기우로만 끝났으면 좋을련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미 시장은 존재하고 미술 작품은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의 가격은 어떤 기준으로 매겨질까?

최선희의 '런던미술수업'(아트북스)에 간단하게 그 기준이 나열되어 있다. (175쪽에서 177쪽 사이)

주제 Subject Matter 
좋은 작품은 주제와 색깔로 그만의 존재감presence을 갖는다. 존재감은 이를 테면 그림을 벽에 걸었을 때 공간을 지배하는 일종의 힘 같은 것이다.

제작 시기 Date
작가의 작품 활동 시기 중 어느 시기에 제작되었는지가 중요한다. 전성기에 제작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가격이 틀려진다.

희귀성 Rarity
특별한 사연이 얽혀 있다거나 몇 점 되지 않는 독특한 소재의 작품 등이 이에 속한다.

도록 Cataloging
도록에 실린 연구 자료나 전시 기록 등이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출처 Provenance
누가 작품을 소장했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보관 상태 Condition
컬렉터들은 점점 이 요소에 매우 민감해지고 있다.

유행 Fashion 
유행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현재 피카소의 후기 작품이 몇 년 사이 굉장히 유행하고 있다.

- 최선희, 런던미술수업(아트북스)중에서



대부분 미술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거의 엇비슷하다. Tom McNulty의 'Art Market Research'에서 언급된 기준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Popularity of the subject work's style
주제나 스타일의 인기도. 위에서 이야기한 주제, 유행과 연결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The Artist's Reputation
예술가의 명성. 이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전시 경력, 비평의 반응, 작품 소장처 등이 포함된다.

Rarity
희소성.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도 동일한 요소다.

Condition 상태

Provenance 출처

Other Factors 다른 요소들 
 
-Tom McNulty, 'Art Market Research - A guide to Methods and Sources'(MCF, 2006)중에서



이러한 기준들 앞에 있는 기준은 그 작품이 진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위작은 작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그런 스타일이나 주제가 유행할 때 그 때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제작된다. 똑같은 연대에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갤러리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특정 작가의 캔버스 종류, 사용된 물감의 종류, 특성 등을 모두 자료(DB)화 시켜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작 논쟁이 붙는데, 전혀 그런 자료가 없는 한국 미술 시장은 그냥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위의 기준들은 각기 따로 적용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현대 미술 작품의 가격은 대체로 위의 기준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구매와 소장은 콜렉터의 몫임을 명심하자.

가령 아트 옥션의 가격은 권장 소비자 가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경매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가격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겨진 가격이 갤러리 가격으로 정착해 버리는 경우를 몇 번 보곤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미술 작품 소장에 관심있다면 먼저 똑똑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