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우키요에 속 풍경화

지하련 2008. 12. 17. 07:42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우키요에 속 풍경화
2008.6.4 - 7.4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내가 읽는 책이며, 보는 전시며, 듣는 음악을 다 리뷰한다면, 나는 종일 리뷰만 써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뷰 쓰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버린 터라, 쓰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어 적기는 하지만, 일종의 소모적인 자기방어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전시도 벌써 반 년이 지난 후에야 글을 적는다.  

내가 우키요에를 기억하는 건 마네 때문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은 직접적으로 오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근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거의 최초로 원근법을 극복하고 평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켰다는 점이며, 이 평면성에 대한 연구가 인상주의 예술가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우키요에가 서양 근대 미술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던 '자포니즘japonisme'속에서, 1889년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실 일본이라는 것 자체가 순전히 누가 만들어낸 허위에 불과하다. 그런 나라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그런 국민도 없다"
- 일본의 재구성, 25쪽(마티, 2008) 


오스카 와일드의 저 지적은 그 당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19세기 말 일본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하다.

지난 19세기 내내 외국에 퍼진 일본의 이미지 가운데 일부는 일본인들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지적이다. 와일드는 일본의 이미지가 당시 판화로 유럽 자포니즘을 주도하던 호쿠사이와 같은 미술가들이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꾸며낸 창조물"이라고 일갈했다. 대단히 날카로운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일본의 주요 지도자와 사상가들 또한 일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일본인 자신들의 상상의 산물인 경우도 많았기에 일본인 가운데 오리엔탈리스트가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 일본의 재구성, 29쪽(마티, 2008)


단편적인 인용이기는 하지만, 이 당시 일본인의 삶과 우키요에 속의 풍속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있었던 '라틴아메리카거장전'(덕수궁미술관, 2008)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라틴아메리카의 근현대사가 엄청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사건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초여름에 있었던 이 전시는 작은 우키요에 판화들이 나열된 조용한 전시장에서 이루어졌다. 평일 낮에 간 것이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19세기의 일본이 도심 한 가운데 비밀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정갈한 느낌의 판화들은 정직해보이기 보다는 너무 장식적이거나 꾸밈이 많았다. 이건 작품의 크기 탓이거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우리들로서 실제 우키요에 작품이 주는 감동이란 미미할 수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꾸며진 어떤 세계 속에 자신을 깊이 담그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세계 속에 잠기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일까.
(위에서 인용한 '일본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간단하게 전시 카타로그에 실린 설명문을 인용해본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 시대(1603 - 1867년)에 당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린 풍속화를 일컫는다. 우키요에는 당시 시민층의 경제력 상승에 따른 서민 문화의 발달로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특히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인기가 높아졌다. 에도 초기에는 마을의 일상 생활, 유곽의 미인들,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 예술 공연 등의 특정한 장면을 주제로 많이 담았으며, 에도 후기에는 기존의 미인화나 배우 그림 이상으로 서정을 추구하는 기풍이 나타나면서 아름다운 일본의 풍토를 대상으로 한 풍경화가 서민층에도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풍경화란 경치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서, 근대에 들어와서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무한함, 무상함, 영원, 생명력, 활력, 편안함 등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초기에는 배경 묘사에 머물렀으나 점차 풍경 묘사가 중심을 이루면서 원근법, 음영법, 농담법 등과 같은 기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묘사의 절정에 이른 작가로서 가츠시카 호쿠사이와 우타가와 히로시게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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