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Thinking/Technology

한국 인터넷에서의 정보의 생산-유통-소비 : '미네르바 사건'을 보면서

지하련 2009. 1. 11. 11:46


0.
간단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볼 겸, 노트해둔다.

1. 
나의 경우, 한국의 검색엔진을 통해 검색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찾는 단어에 대한 양질의 검색 결과를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양질의 정보가 필요할 경우에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4u.net)을 통해 학위논문을 통해 구하며, 나머지는 google.com을 통해서 얻는다. 하긴 학위논문들도 서로 베낀 것이 많아서(특히 예술분야), 제목만 보고도 서로 어떻게 베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베끼지 않았으면, 그냥 참고 서적에 실린 정보를 목차에 맞추어 나열한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러니, 내가 주로 의존하고 신뢰하는 것은 책이나 전문잡지에 실린 아티클들이다.

2.
IT나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양질의 아티클은 한국의 인터넷을 통해 많이 얻을 수 있다. 이는 비즈니스 정보도 마찬가지다. 종종 열받게 만드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나마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북마크(즐겨찾기) 해놓은 사이트나 블로그만 들어갈 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는 전멸상태다. 양질의 정보라곤 단편적인 기사나 리뷰가 전부다. 따라서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논문집이나 책을 통해서 구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 검색을 얼마나 잘 하느냐' 따위가 아니라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과 올바른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느냐' 이다.

3.
미네르바가 쓴 글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시판에 볼 수 있는 글이다. 말줄임표가 많고 군데군데 맞춤법도 틀리는 구어체 표현들이다. 그리고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표현들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하고 있다. 확실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곧바로 '미네르바 신드롬'으로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4.
전문 정보의 경우, 전문가를 통해서 얻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전문가들은 대학이나 기업체에 속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금융 시장과 관련한 전문가들은 금융 시장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상황은 뻔하다. 부정적인 의견을 최대한 줄이는 것! 애초부터 합리적이고 건전한 정보의 생산-유통-소비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만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광고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사의 수익 모델은 '광고'이기 때문에.

5.
일반 대중이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이웃사촌이 아니라 '전문가'이다. 그런데 '전문적인 의견이나 정보'와 관련된 생산부터 어딘가 삐닥하게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증권사의 애널 리포트들 대부분이 부정적 의견에 인색하다. 더구나 애널리스트의 자질 문제도 거론되지 않는가.(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12/01/200812010219.asp) 실은 전문 정보의 생산 자체부터 '미네르바 신드롬'을 만들기 좋은 최적의 상황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믿을 수 있는 전문가도 없고 전문 정보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6.
그렇다면 인터넷은 애초에 신뢰할 만한 전문 정보를 얻기에는 부적당한 채널은 아닐까? 이렇게 해석하면,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보기에는 인터넷은 좋은 양질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맛있는 식당이라던가, 간단한 의학 정보라던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들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 정보의 수준으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직도 양질의 전문 정보는 대부분 유료로만 구할 수 있다. (한국은 이렇게 구한 유료 전문 정보가 양질의 정보가 아닐 경우가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지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전문 정보의 생산 시스템은 그 시작부터 '편향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네르바의 글,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견인데, 이런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를 만들었다.

7.
인터넷은 정확한 정보의 생산-유통-소비보다는 부정확하고 감정적이며 부정적 이슈가 될 만한 정보의 생산-유통-소비에 더 민감하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부정적인 의견의 정보를 막기에만 급급했다. 과거의 정부는 아예 대놓고 부정적인 의견들과 싸우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다면, 현 정부와 여당은 부정적인 의견의 생산 자체를 막으려는 인상을 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미네르바의 글은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예 법률적 규제를 할 심산이다. (이러한 법률적 규제는 '악플러'에 대한 것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듯 '정치적 논란'을 만들고 있다.)

유언비어라도 맞으면 진실이 된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기 보다는 소문도 있고 유언비어도 있고 진실도 있는 일종의 시장(Market)이다. 여기에는 공짜 상품도 있으며 값비싼 명품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소매치기도 있고 소매치기를 잡기 위한 경찰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정신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곳에서 양질의 정보와 좋은 상품을 구한다. 

8.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면,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부정적인 의견을 아예 막기로 한다면, 매우 잘못된 결론이다. 도리어 정부와 여당이 원하는 대로 긍정적인 의견이 제대로 된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두 가지 의견이 인터넷 속에서 서로 토론하면서 구체적인 여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악플도 마찬가지다. 이름 모를 잡초도 있어야 된다. 잡초를 다 뿌리 뽑는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법원의 '미네르바의 구속 수감 결정'은 좀 지나친 결정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반대로 법관은 한국의 인터넷이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내렸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비판적인 글을 올리지 않았는가.

9.
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명제의 폐단은 '책임진다'라는 단어 때문에 제대로 된 부정적 의견을 막는다는 데 있다. 문학 비평이나 미술 비평에서 종종 나오는 '주례사 비평'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대놓고 욕하는 문화'가 너무 없다. 오직 '뒷담화'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음 아고라가, 익명성에 기반해 있기는 하지만, '대놓고 욕하는 문화'가 있다. 큰 문제는 '익명성'에 기반해 무책임한 글들도 참 많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기 이름 공개하고 대놓고 욕해도 욕먹지 않는 세상'이다. 이럴 때 제대로 된 토론 문화가 생기하고 토론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되고 자기자신을 반성하지 않을까. 

10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 정도 수준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선 정말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다. 이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은 나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번 미네르바 사태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대응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11.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은 다양하고 폭넓은 수준에서 양질의 정보의 생산-유통-소비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의견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인터넷이 스스로 정화하고 바른 정보를 생성해 낼 수 있도록 그러한 시스템, 혹은 제반 여건을 만드는 방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