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여의도 쪽에서 들린 헬리콥터 소리의 공포, 두려움, 불안, 한 치 앞도 예상되지 않는 미래를 경험했다면, 결코 찍어선 안 될 대선후보들이 있었다. 심지어 '리박스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작자들 앞에서 국민들은 무조건, 압도적으로 찍어선 안 된다. 하지만 결과는 놀랍고도 실망스러웠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마저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할 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최근 읽은(하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도널드 서순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에서, 이미 여러 권의 역사서들로 특유의 통찰을 선보인 역사학자답게 21세기의 병적 징후들을 분노에 찬 어조로 비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절절한 호소가 일반 대중에게 닿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나 또한 이 포스팅이 누군가의 푸념, 분노, 절망, 회한 밖에 되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누구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앞으로 오는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 너무 실망스럽고 어쩌면 나라의 몰락이나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 우리에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었으나, 너무 안일한 일반 대중들과 무책임한 지식인들과 언론, 사리사욕만 밝히는 경제인들과 정치인들로 인해 무너질 것임을 대비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분노와 지혜가 담긴 책 <<자유주의자들아 들어라! Listen, Liberal!>>의 저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트럼프를 물리치려면 언론부터 자신들의 결함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지난 몇 십년 간 언론이 숱하게 저지른 엄청난 실책'을 열거했다.
"경제언론들이 앞장서서 찬양한 닷컴 버블, 저널리즘의 위대한 현자들이 부추긴 이라크 전쟁, 2008년 금융 위기를 가능케 만든 전문가들의 만연한 부정행위를 알아채지 못한 거의 완전한 실패, 언론은 하는 일마다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절벽 너머로 무모하게 돌진할 때 조차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천박한 속물인 트럼프는 그들 모두를 압도했다. 병든 우리 시대를 증명이라도 하듯 단순하고 천박한 언어를 끝없이 반복한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사를 드골, 콘라트 아데나와, 해럴드 윌슨, 빌리 브란트 등이 오늘날처럼 천박하고 추잡한 언사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입에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183쪽)
'위기에 빠진 21세기 세계의 해부'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의 첫 인상은 문화사적 배경에 따른 문명 비판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포용력 많은 역사학자인 도널드 서순마저 분노하게 만드는 현대 정치의 몰락, 대중들의 무관심, 정치와 언론의 실책들의 종합판임을 열거하는 것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결국은 책은 현대 정치 비판서가 되었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이며, 한국도 본격적으로 대처해야 될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시대는 지나간 역사들로 그 어떤 지혜도 받지 못하는, 심지어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궤변으로 넘겨버리는 최초의 시대가 될 것이다. 어느 젊은 대선 후보가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공중파로 생중계되는 방송 토론회에서 이야기하더라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과 함께 참기 힘든 분노를 느꼈다. 놀랍다.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현재만 고려하며, 자기 스스로의 비판적 사고는 사용하지 않고 어딘가 조작되어 통용되는 몇 가지들의 사소한 정보들로 다가올 내일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긴 브랙시트를 찬성한 영국 국민들이나 극우를 지지하는 EU 여러 국가들의 국민들에게도, 심지어 트럼프를 지지했던 미국 국민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