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문득, 하늘, 그 거리, 그 골목의 새벽.

지하련 2025. 3. 17. 18:46

 

거실에서 바라본 하늘은 높고 구름은 현란하다. 바람이 많았다. 바람부는 날엔 압구정동으로 가야 된다던 그 시인을 읽지 못한지 한참 되었다. 슬픈 일이다. 영화 감독이 된 이후, 그는 인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영화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 잘 모르겠다. 아직 나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보다 말았고, 한 때 마돈나를 사랑했던 숀 펜의 영화는, 그 특유의 불편함으로 인해 매번 처음만 보다가 멈춘다. <<인디안러너>>가 그랬고 <<인투더와일드>>가 그랬다. <<인투더와일드>>의 사운드트랙은 정말이지!! 

 

요즘 자주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행 떠나는 것에 대해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유 탓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이 다들 잠든 자정. 일본의 어느 소도시 산기슭에 있는 어느 호텔, 하나둘 조명이 꺼지는 로비 뒷편. 혼자 피아노를 치던 여 피아니스트가 떠나고 상기된 표정의 젊은 바텐더가 위스키 한 잔을 건넨다. 말이 없이 고개를 돌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약간의 소란스러움 속에서의 멜로디를 선물하던 검정 피아노를 보며, 우연스럽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 피아니스트와 한 마디 나누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해 전 떠났던 일본의 어느 도시 산기슭에 있던 호텔 바에 찍은 사진을 보며, 그냥 혼자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하지만 봄은 우울한 처녀들의 계절이지, 외국의 어느 변두리 도시 구석으로 숨고 싶은 중년의 계절은 아니다.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은 과일향으로 다채로움으로 자신을 꾸미는 와인의 계절이지. 묵직한 타격감과 감미로움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위스키의 계절이 아니다. 결국 숨고 싶은 중년이 선호하는 묵직한 타격감의 위스키가 어울리는 계절은 언제일까. 결국은 모든 이들이 잠든 새벽이 되겠지. 살짝 흐린 하늘에, 아주 드물게 별이 보이다가 사라지고, 조용한 비가 대지를 적시며, 새벽 손님을 기다리며 도시의 여기저기를 누비는 택시 기사들이 짜증을 내며 비가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라며 투덜대는 그런 쓸쓸한 새벽이겠지. 손님들이 일찍 떠나고 가게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손님들이 남기고 간 위스키를 한 두 잔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새벽일 꺼야. 그렇게 취해 가는 아침을 맞이하며, 세상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자신을 증오하게 될 아침이겠지. 끝내 위스키 병은 다 비워지지 못할 것이며, 너무 말짱하게 맞이하게 되는 새벽의 밝음은 너무 어색해서, 나를, 너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잊어버리고 마치 화창한 봄날 행복한 여행을 꿈꾸는 이십대 풋풋한 연인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겠지. 봐, 아직 취하지 않았어, 아직 늙지 않았어, 그래 아직 우린 이 저주스런 세상을 헤쳐나갈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그렇게 집으로, 일터로 여행을 떠날 꺼야. 그렇게 떠나겠지. 

 

그렇게 떠난 후 몇 명은 다시 그 도시로, 그 골목으로, 그 가게로 돌아오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