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세계사
허버트 조지 웰스(지음), 육혜원(옮김), 이화북스
1922년에 나온 역사책이다. 지금 읽어도 나쁘지 않은 책이며, 최근 새롭게 알려진 사실들도 함께 설명하고 있어 20세기 초반의 시각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2006년에 펭귄북스에서 재출간된 버전을 그대로 한글로 옮긴 듯하다.
이 책의 장점은 H.G.웰스의 시각에서 중요한 부분들만을 정리하고 있어,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일반적인 세계사 서적들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데 있다. 그래서 책 초반에는 '생명의 탄생'이나 '인류의 기원' 부분에서는 자연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 같은 부분도 등장하며, 현대의 무신론적이며 과학적인 태도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노력이 눈에 띈다. 또한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길게 할애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세계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진 이들에겐 오래 걸리지 않을 책이나, 그렇지 않다면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또한 이 책만 읽어선 안 되며, 다른 세계사 책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메모해둔 것을 옮긴 것이다. 내 생각도 덧붙이긴 했으나, 그냥 책 읽으며 쓴 메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 로마에 대하여
이 거대한 로마 제국은 기본적으로 노예 국가였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삶의 풍요로움과 자유를 누렸다는 사실만 봐도 로마가 부패하고 멸망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로마가 남긴 거대한 도로와 찬란한 유적, 전통은 우리 후세대들이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 모든 영광이 좌절된 의지와 억눌린 사람들, 일그러진 욕망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제 노역, 정복으로 이루어진 그 넓은 왕국 위에 군림한 소수의 사람들의 영혼은 불안하고 불행했다. (144쪽)
476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이미 제국은 동과 서로 나눠진 상태였다. 동로마제국(비잔티움)은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서로마제국은 라틴어를 사용했다. 하나의 제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통성은 동로마제국에게 있었으나, 로마의 색채는 희미해져갔다. 로마 후기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이지만, 로마 제국에 사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도로는 15세기 무렵 르네상스의 기운이 무르익을 때까지 유럽 전역을 이어주고 있었다. H.G.웰스는 대놓고 노예 국가라고 말하지만, 이 당시 노예국가가 아닌 곳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다. 노예국가였기 때문에 불안하고 불행했다는 서술은 잘못되었다.
불안한 인간의 마음은 종교에도 반영되었다. 이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은 일상이 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의식이었다. 우리 현대인의 눈에는 이들의 신이 비합리적으로 보이겠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신은 강렬한 꿈에서 본 것처럼 선명하고 즉각적인 확신을 주는 존재였다. 고대에는 한 도시가 다른 도시 국가를 정복한다는 것이 신이나 여신을 바꾸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146쪽)
문명의 몰락을 다룬 책들은 다수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복잡성의 증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점이 왔을 때, 문명은 몰락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도시는 한 두 가지의 문제로 갑작스러운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령 전기가 나간다든지. 이런 측면에서 고대 로마 후기의 사회상은 내부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하나로 통합되기에는 너무 넓은 지역이었다. 문명 후기의 불안을 종교가 막아주는 형태로 변화한다.
2. 중세의 시작
서로마제국의 가장 큰 유산은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 제국이 망한 후에도 제국의 권위와 전통을 물려받은 가톨릭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5세기 무렵에는 서유럽의 중심으로 떠올라 국가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왕들을 지배하는 위치가 되었다. 로마의 시민권의 결속과 가톨릭 교회의 신앙적 결속이 선교사 조직으로 넘어갔다. 로마의 대주교는 자신이 전체 교회의 수장, 곧 교황임을 선언했다. 서로마 제국에 이제 더는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교황은 제국의 지위와 권한을 자신에게 귀속시켰다. (165쪽)
어쩌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가 지켜낸 것이다. 그것이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켜낸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보기에 암흑 시대에 가까워 보였을 지도 모르나, 어쩌면 더 큰 비극이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땅을 로마 가톨릭 교회가 버텨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경제적, 계급적 차이와 사유재산, 개인적 특권들을 분명히 규탄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에 속해 있으며 모든 소유물 또한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가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의로운 삶이란 우리의 모든 소유와 존재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 (152쪽)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몇 백년이 지난 후 전 유럽에 퍼졌다. 단 유대민족을 제외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한 사마리아인(유대인과 다른 민족의 혼혈)을 통해 편견없는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을 보라. 나는 왜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했는지, 심지어 왜 처참했던 홀로코스트가 나왔는지 이해될 지경이라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가 정하고, 제국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현재의 이스탄불)로 옮긴 후 다시 전성기가 오는 듯했지만, 그건 짧은 시기였을 뿐이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 ~ 565) 때에는 로마 영토 일부를 수복하였으며, 성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고, <<로마법 대전 Corpus luris Civilis>>를 편찬했으며, 더 나아가 아테네의 철학 학교를 폐쇄하며 신학 중심으로 바꾸어 나갔지만, 비잔티움 옆에선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등장했다. 이미 3세기부터 비잔티움과 경쟁하고 계속 충돌했으며, 결국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렸다.
계속되는 전쟁과 쇠락해가는 두 제국 속에서 과학과 철학은 죽어있는 듯 보였다. (...)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시대는 관용이 사라진 시대였다.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 것이었다. (171쪽)
종교도 달랐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였으며, 그리스도교를 박해했고, 비잔티움은 그리스도교 이단을 사냥했다. 이 경쟁은 근세 초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서유럽은 중세라는 긴 잠에 빠지고, 로마제국에 대한 기억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사제들에 의해서 명맥이 유지되었다.
3. 바이킹과 중세의 가을
노르드인들은 남하하다가 8세기부터 '바이킹'이라는 형태로 유럽 곳곳을 약탈했다. 앵글로 색슨 잉글랜드는 로마의 지배가 끝나는 5세기부터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1066)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발견했으며, 북아메리카에도 도달했고 오늘날 캐나다 지역에 소규모 정착지를 세웠다. 이들의 이동은 서양미술사엔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며, 희미하게 암흑에 가까웠던 중세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11세기 이전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들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교회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제 역시 민중의 일부였다. 그런데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15 ~ 1085, 재위 1973 ~ 1085)가 사제들의 독신 생활을 명령했다. 그는 교황직의 우월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성직자들에게 독신 의무를 강제로 부과했다. 그리고 성직 매매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221쪽)
가톨릭 교회의 자정활동은 그레고리오 7세 이후 계속 이어졌지만, 성과가 그리 좋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회의 가르침은 근대를 향해가는 시대와 맞지 않았다. 12세기 르네상스론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는 현실 정치에서 그 권위를 잃어버리기 시작했으며, 머지 않아 종교개혁으로 구교와 신교로 나누어질 운명이었다. 그리고 근대 국가와도의 갈등과 대립은 이어졌다.
4. 신성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은 카를 5세(1500~1558) 때 전성기였다. 카를 5세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비범한 군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중유럽과 서유럽, 남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의 식민지까지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의 영토가 너무나도 넓은 나머지 그의 제국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다. 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스페인 국왕, 이탈리아의 군주 등 수많은 직함을 갖고 있는, 가장 많은 국가의 왕관을 쓴 인물이었다. (258쪽)
이 정체불명의 제국은 각 국가의 제후들이 모여 황제를 정하는, 느슨한 형태의 제국이었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였고 이 제국은 19세기까지 이어지지만, 그냥 이름만 있는 제국에 가까웠다. 나는 신성로마제국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의 EU와 비슷한 형태처럼 이해되었지만, 일종의 연합체라는 점을 제외하곤 EU보다 더 실체가 없는 제국이었다.
5. 미국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것은 첫째가 증기선이고, 그 다음이 철도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광활한 대륙국가인 미국은 하나의 나라로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329쪽)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하나의 연방국가로 된 것은 증기선과 철도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하긴 그렇긴 하다.
* 1922년에 초판본이 영국에서 출간되었으며, 1936년에 다시 펭귄북스에서, 그리고 2006년에 다시 나왔다. 1940년대 프랑코 정권의 스페인에서는 이 책의 출간이 금지되었는데,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가톨릭 교회에 대한 공격, 스페인 정권에 대한 편견 등으로 금지되었다가 1963년에야 비로소 스페인에서 출간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