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지하련 2025. 5. 3. 13:18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지음), 송태욱(옮김), 문학동네 

 

이것으로 스가 아쓰코의 수필집은 다 읽은 건가. 지금 찾아보니, 문학동네에서만 번역된 줄 알았더니, 그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몇 권이 더 번역되었구나. 스가 아쓰코의 수필이 주는 매력은 분명하다. 그냥 잔잔하다.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때로 이탈리아 문학 이야기도 나오고 일본 이야기도, 이탈리아 친구들 이야기, 카톨릭 좌파와 코르시아 서점 이야기도. 

 

이 책은 이탈리아 친구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가령 이런 시를 쓴 친구이야기도. 

 

나에게는 손이 없네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어줄 ... ...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David Maria Turoldo)의 첫 번째 시집 <나에겐 손이 없네>에 실린 시다. 신부이면서 시인이었던 투롤도. 

 

남편이 죽고 처음으로 나 혼자 수도원을 찾아갔을 때, 다비드는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중이었다. 종루 밑에 세워진 성당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보기 드문, 간소하고 본질적인 13세기 고딕 건축물이었다. 성당으로 들어가자 나를 알아본 수도사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어둠이 눈에 익자 기도중인 다비드의 등이 촛불 빛에 비쳤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비드의 조용한 뒷모습이었다. (57쪽) 

 

책 첫머리에는 아래와 같은 시가 있다. 

 

돌과 안개 사이에서, 나는
휴일을 즐긴다. 대성당의
광장에서 쉰다. 별
대신
밤마다, 말에 불이 켜진다

인생만큼,
살아가는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없다

- 움베르토 사바, <밀라노> 

 

 

스가 아쓰코를 통해 알게 된 시인 움베르토 사바. 예일대에서 나온 영문 번역서가 있으니, 한 번 번역해 보아야겠다. 사바의 고향인 트리에스테에 가는 게 꿈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삶의 피로를 풀어주는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스가 아쓰코의 이 작은 책은 적어도 피로할 때 작은 위안이 되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