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15

12월 23일 사무실 나가는 길, 나는.

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별 볼 것 없는 사진 세 장

사진을 찍어 PC로 옮기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내 신세같다고 할까. 일은 밀려드는데, 바로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한 제안은 긍정적인 담당자 손을 떠나 위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다. 또다시 나는 경영을 배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딱 맞다. 아직 배운다는 건 좋지 않은데, ... 이 말은 죽을 때까지 할 것같으니 걱정이다. 올해 독서 계획 중에 '정치철학' 책을 읽자는 것이 있었는데, 바쁜 일상 속에 흐지부지 되었다.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대선을 앞두고 한 번 올릴 예정이다. 설마 선거법 위반으로 걸려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요즘 주로 활동하는 곳은 구로디지털단지다. 이 곳은 좀 삭막한 느낌이다. 사무실이 ..

늦은 가을과 이른 겨울 사이

지난 주말, 회사 워크샵을 강화군 석모도로 다녀왔다. 이 회사에 다닌 지도 벌써 2년이 꽉 채우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도전과 실패, 혹은 작고 어정쩡한 성공을 경험하면서, 그 경험이 작은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니기 시작한 곳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답보다는 물음표가 더 많다는 건,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 늦가을 햇살이 갯벌을 숨긴 바다 물결 위로 부서졌다. 사소하게 눈이 부셨다. 차를 싣고 짧은 거리의 바다를 건너는 배 뒤로 갈매기들이 쫓았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입맛이 길들여진 갈매기는 이미 야생의 생명이 아니었다. 석모도에 도착한 지..

이 겨울을 견디는 능력

비싸게 주고 산, 얇은 메탈 색의 아이와를 주머니에 넣고 작은 이어폰으로 대학 1학년 때 계속 들었던 노래다. 사무실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틀어져 있는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텅~하니, 가슴을 스치고 겨울 냉기가 지나감을 느낀다. 인생의 힘이란, 이 겨울 냉기를 견디는 능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빛과 소금 - 제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