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

2월을 물들이는 스산함, Hoc erat in votis

우리에게 삶의 희망이나 목적 같은 건 없고 사랑이라거나 미래 따윈 필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노력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조지 기싱George Gissing의 을 읽은 다음의 내 감상평이었다. 늘 다시 읽고 싶은 책이지만, 늘 다른 책들에게 밀려 손 안으로 들어왔다가 바로 서가 사이로 돌아가지만. 어쩌면 시의적절한 포기는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은 아닐까. 아는 분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너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니'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 했다. 글쎄, 나는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코스닥 상장까지 시키는 것, 또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의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것, 아니..

페이퍼, 정재승, 오픈 릴레이션십

아직도 이 잡지가 나오고 있나 싶어 한 권을 주문해 읽었다. 예전엔 월간지였는데, 이젠 계간지로 나오고 있다. 생각보다 읽을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 살짝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로 떠났던 소설가 신이현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이 잡지를 통해 알았다. '거참, 이게 언제적 이야기인데'라며 묻는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2020년 한 해 동안 사람들과 소설이나 소설가, 혹은 문학이나 철학, 미술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래서 자주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읽는가"라고 묻는다.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없다. 그저 습관처럼 읽고 언젠간 도움이 되겠지 정도랄까. 페이퍼 편집장은 그대로인 듯 싶다. 이름이 똑같으니까..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김동조(지음), 북돋움 경제학 책을 읽었지만, 경제학의 생리에 대해 파악하진 못한 듯 싶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저자는 금융 회사에서 종사하는 트레이더이지만, 그가 쓴 글은 경제학의 관점에서 시사적이며 흥미롭기만 하다. 경제학은 '사물의 응당 그래야만 하는 면'보다는 '현상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에 더 주목한다.- 8쪽 확실히 기준이 있다는 건 다양한 현상과 사건 앞에서 동일한 논조로 설명 가능하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일관되게 서술되어 있다. 여전히 공부(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며, 공부는 다른 방법이 지닌 불확실성에 비해서 무척이나 분명하고 불확실성이 적은 성공 방법이다. - 161쪽 특히 평등과 분배, ..

목포 여행

금요일, 토요일, 이틀 동안 목포에 다녀왔다. 아는 형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포에 있는 탓에 자주 보지 못하나, 서울에 있는 동안 자주 술을 마셨고, 마흔 중반의 첫 결혼이라, 조금 망설이다가 벗들과 함께 다녀왔다. 멀리 갔다오면, 근사한 여행기 하나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문장은 예전만 못하고 생각이 얕아지고 시간은 없다. 바다 모습이 내가 살았던 마산 앞바다와 비슷해 보였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파도는 낮고 섬들이 가로막은 풍경. 금요일 저녁에 목포에 도착했고, 토요일 저녁 늦게 서울에 도착했다. 토요일, 결혼식이 열렸던 목포 현대호텔을 나와 호텔 뒷편을 걸었다. 물기가 대기 중에 가득했고 몸은 어수선했다. 서울에서 마신 알콜 기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목포에서 다시 술을 마신 탓이다. 현대..

철길 위의 평화스러운 침묵

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 김진영 지금도 이럴까? 하긴 지금은 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지역마다 지역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한때 슬프고 비극적이었으나, 이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을 해석하는 걸까. 영화는 유쾌하다. 작고 사소한 소재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마치 즐거운 순정 만화 같다고 할까.또한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이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로 포지셔닝되었고,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들로만 모든 것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그렇기에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그 두 지역의 갈등을 경험한 이들에게 있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