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 2

라디오의 잡음

사라져가는 가을의 향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듯, 비가 내렸다. 올해의 연애도 실패였고 올해의 사업도 성공이라기 보다는 실패의 빛깔에 가까웠다. 독서의 계절은 오지 않았고 작품 감상은 우아해지지 못한 채, 돈에 걸려 넘어지며, 내 감식안을 시험했다. 종일 반쯤 잠에 취해, 술에 취해, 쓸쓸함에 취해 피곤했다. 겨우 밤 늦게 정신을 차리고 설겆이와 청소를 했으나, 나를 행복하게 해줄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스턴트커피에 오래된 우유를 잔뜩 넣고 죽는 시늉을 했다. 라디오를 틀었으나, 잔뜩 잡음이 끼인 채, 주파수 사이를 헤매며 겨우겨우 내 귀에 도달했다. 내일 약속은 한없이 뒤로 밀려가는 듯 하고 까닭없는 내 사랑도 한없이 뒤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얼마 전 만난 어떤 이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었..

슬픔의 아테나

BC 455∼450 아테네 출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Acropolis Museum, Athens) Grand Collection of World Art 고전주의,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리, 원칙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었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는 결국에는 우울함을 띄게 되는 것같다. 그리스 고전기의 작품이지만, 다른 고전주의적 작품들과 달리 이 부조에서는 어떤 우울함이 묻어나온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냄, 전투에서 벗의 죽음, 시간의 덧없음, 그러니깐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변하고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실은 그리스 문화의 이면에는 이런 것이 내재해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관이 주류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