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29

동정에 대하여, 안토니오 프레테

동정에 대하여 Compassione - 가장 인간적인 감정의 역사 안토니오 프레테(지음), 윤병언(옮김), 책세상 동정compassione이란 ‘함께com’ 나누는 ‘열정passione’을 뜻한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나누는 아픔, 고난passione에의 참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동정은 타인과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하지만 동정은 보기 드문 감정이다. 타인의 고통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고통으로 변하는 경험 자체가 진귀하기 때문이다. (9쪽) 문학의 차원과 예술의 차원에서 그려지는 동정의 모습은 곧, 타자의 현존, 타인의 얼굴과 타인의 정체가 지니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이다. 이 깊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정체를 강화하는 것이 바로 타인..

근대의 서사시, 프랑코 모레티

근대의 서사시 Modern Epic프랑코 모레티(지음), 조형준(옮김), 새물결 프랑코 모레티의 이 책, 읽기 쉽지 않다. 그의 말대로 너무 유명하지만, 거의 읽히지 않는(읽기 어려운) 서사 작품들을 두고, '서사시'라는 테마를 통해, 근대가 어떻게 이들 작품 - 세계적 텍스트 속에서 드러나는지, 말 그대로 어떤 특징들을 가지며, 어떤 방식으로 근대사회, 혹은 근대성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상당히 방대한 인용과 참고 문헌들,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언급하는 탓에 까다로운 독서를 요구한다. , , , , , , , . 이것들은 그저 오래된 책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역사적 기념물이다. 근대 서구가 자신의 비밀을 찾아 오랫동안 자세히 파고들어온 성스러운 텍스트이다. (18쪽) 하지만 모레티의 의도..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

(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에 실린 이경률의 의 일부를 정리하면서 덧붙인 글이다. 나는 예전에 라는 짧은 포스팅을 통해 레디메이드와 오해하기 쉬운, 혹은 그와 동일한 양식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뒤샹은 초현실주의자의 '발견된 오브제'와는 전혀 다르고 말한다. 그러나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발견된 오브제’와는 다르다. 이 차이를 뒤샹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레디메이드는 개인 취미의 문제이다. 발견된 오브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른바 발견된 오브제가 아름다운 것인가 특이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인 것이다. 기성품의 선택은 미적인 즐거움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선택은 시각적인 무관심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뒤샹의 레..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 박주석의 , 최봉림의 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미학입문, H.오스본

미학입문 Theory of Beauty : An Introduction to Aesthetics H. 오스본(Harold Osborne) 지음, 김광영 옮김, 박우사, 1994 한창 공부할 때 사둔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고 구해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1952년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며 해롤드 오스본의 주저도 아니다. 번역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미학에 대한 충실한 이론서도 아니다. 저자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름다움(Beauty)를 가진 예술 작품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름들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정확히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일부는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어, 제대로 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많은 인용문들은 어느 책에..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원제 Le Photographique)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Krauss(지음), 위베르 다미슈 Hubert Damisch(불어 옮김), 최봉림(불어를 한글로 옮김), 궁리 (대림이미지총서05) Jackson Pollock (1912-1956)Gelatin silver print, 1950National Portrait GallerySmithsonian InstitutionGift of the Estate of Hans NamuthImage copyright Estate of Hans Namuth 그러나 분명 나무스는 사진가로서 그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가적 역량으로 촬영 각도, 프레이밍, 흑백 콘트라스트, 그리고 문제가 되는 사진 대상의 모든 구성 요소를 고려했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흄(Hulme)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 한스 블루멘베르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 - 논문들과 연설 하나 Wirklichkeiten in denen wir leben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지음), 양태종(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Die Lesbarkeit der Welt, Suhrkamp, 1981)은 문학동네 모더니티총서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어떤 연유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출간되지 못했다. 나는 이 총서의 목록을 통해 흥미로운 제목인 으로 그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 그의 책이 번역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짧은 책 한 권이 번역되었을 뿐이고, 오늘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이 책이다. 그러나 내 리뷰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이 블로그에 자주 오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나는 직장인이..

레비나스의 '죽음'

일요일 저녁, 레비나스에 대한 리뷰를 읽다가 레비나스의 문장을 옮겨적는다. 아련한 느낌이 든다. 주체가 어떠한 가능성도 거머쥘 수 없는 죽음의 상황으로부터 타자가 함께 하는 실존이라는 또 다른 특성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 ...) 미래는 손에 거머쥘 수 없는 것이며, 우리에게로 떨어져서 우리를 엄습하고 사로잡는 것이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이다. 오로지 홀로 있는 주체 안에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 순수하게 개인적인 지속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인다. - 죽음이 확실함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무화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 ...) 현존보다 더 영향을 미치는 파열, 선험성보다..

아시아 미술에 대한 고민

오랜만에 읽은 미술 잡지에서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고 되새겨볼 만한 문장들을 읽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옮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탈식민화된 예술적 실천이다. 그런데 나도, 우리도 그걸 자주 잊는다. 다시 이 블로그가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겠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이 때 현실이란 혼종성, 디아스포라, 그리고 상호교환적인 네트워크가 점차 강해지는 상황이 영속화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사회, 현실을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쟁력 있는 기관을 설립해야 하고, 가치 중심적 시스템 하에 더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