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23

<<세계의 문학>> 발행 중단 혹은 폐간

민음사에서 내던 이 지난 겨울호로 '발행을 중단'했다, 혹은 폐간했다. 문학 잡지의 사소한 발행 중단이라고 하기엔 이라는 잡지가 가졌던 위상이나 내가 즐겨보던 잡지엿던 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난 다음, 처음 샀던 문학잡지이기도 했던 . 그 해 박일문이 '하루키 패러디'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을 받았고, 나는 에 실린 을 읽었다. 이나 와 달리, 좀 더 문학주의적이라고 할까, 이론주의적이라고 할까. 그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은 그랬다. 그동안 많은 여러 문학 잡지들이 발행을 중단했다. , , 등등. 세상이 변하면 문학도 변하고, 문학잡지도 변해야 한다. 가끔 들리는 공공 도서관에 비치된 문학잡지들을 보며, 누가 저 잡지들을 읽을까 언제나 궁금하다. 결국 학생이나 관계자,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지음), 송은주(옮김), 민음사 결국은 울고 말았다. 소설 끄트머리에 가서, 오스카와 엄마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TV 방송 뉴스 채널로 가보라. 모든 뉴스들이 현대판 비극들로 도배되어 있다. 뉴스 앵커나 기자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양, 무미건조한 어조와 '이건 진짜야'라는 눈빛으로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를 찾아나선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빠를. 첫 번째 메시지. 화요일 오전 8시 52분. 누구 있니? 여보세요? 아빠다. 있으면 받으렴. 방금 사무실에도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구나. 잘 듣거라, 일이 좀 생겼어. 난 괜찮다. 꼼짝 말고 소방..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

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불한당들의 세계사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보르헤스전집1) 리타 기버트: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보르헤스: 아니요. 그리고 저는 여타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조차도 겨우 간신히 꾸려왔으니까요. ... ... 나는 약간 표류하며 나의 삶을 살았지요. 69세의 보르헤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충고를 할 수 없음,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 ... 지난 설 연휴 읽었는데, 이제서야 간단하게 리뷰를 올린다. 그 사이 이 소설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이다. 직역하면 라고 부를 수 있는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 는 이후의 그의 소설 세계..

만남, 밀란 쿤데라

만남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지음),한용택(옮김), 민음사 1. 에밀 시오랑(치오란), 아나톨 프랑스, 프란시스 베이컨, 셀린, 필립 로스,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 밀란 쿤데라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이 산문집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낯선가는 경험해본 이만이 알 수 있으리라. 좋아한다는 그 고백이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짓게 만들고 나를 일반적이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결국 기괴한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그리고 치오란은 어떤가! 내가 그를 알게 된 시절부터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인생의 황혼기에 블랙리스트에 자리 잡기 위해 이 리스트에서 저 리스트로 돌아다니는 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되지 않아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보르헤스 시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보르헤스(지음), 우석균(옮김), 민음사 그의 소설들을 떠올린다면, 보르헤스의 시도 딱딱하고 건조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너무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수수께끼처럼 펼쳐지지 않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소설가 보르헤스는 잊고 시인 보르헤스만 기억에 담아두게 될 터이다. 그렇게 몇 주 보르헤스의 시집을 읽었고 몇몇 시 구절들을 기억하게 된다. 시집 읽는 사람이 드문 어느 여름날, 세상은 저주스럽고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행동이 필요한 지금, 어쩔 수 없이 반성부터 하게 되는 현실을, 미래보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게 되는 상황 앞에서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어느덧 내 영혼의..

셰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 전집 5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진 것, 지금 없지만 다가오는 공포에 신경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시간을 쌓아갈수록 갑작스레 부는 바람에서 계절의 수상함을 알고, 사랑하는 여인의 뜬금 없는 키스의 따스함 속에 깃든 슬픈 이별의 메세지를 읽으며, 길을 지나는 이름없는 행인의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고 있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전집 중 마지막 권인 을 읽었다. (1975)과 (1983)을 묶어 번역한 이 책은 짧지만 보르헤스의 세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나에게 보르헤스는,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지난..

어떤 영혼들은 ... ...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잠자리에 들기 전 서가에서 낡은 시집 한 권을 꺼내 소리내어 읽는다. 어떤 영혼들은 ...... 1920년 2월 8일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시간의 갈피에 끼워놓은 아침들을,그리고 꿈과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이 있는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열정의 환영(幻影)들로 괴로워한다. 벌레 먹은과일들. 그림자의흐름과도 같이멀리서오는 타버린 목소리의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오래 익어왔다; 그건 시든다,불가사의로 어두운 채.환각에 침식당한어린 돌들은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모든 돌은 말한다: "신(神)은 멀리 계시다!" - 로르카, ,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3년. 이 밤, 로르카 시집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위안이다. 강의백일몽 [개정]로르카저 | 정현종..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민음사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R. 포퍼(지음), 이한구(옮김), 민음사 이 리뷰는 허술할 것이다. 읽은 지 1년이 지났고, 뭔가 독후감 같은 걸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허술한 이 글을 핑계삼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을 서가에 꽂을 생각이다. 칼 포퍼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현대의 위대한 과학철학자이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중심(이데아)를 지향하는 어떤 체계'(또는 전체주의)를 극도로 싫어해서 끊임없이 반증을 제시해야 된다고 역설한 학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고상한 플라톤 대신 현실적으로 이율배반적이며 학문적으로 전체주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르시아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Memoria de Mis Putas Tristes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1.이름 없는 사람들의 독자성으로 포장된, 도시인의 무관심으로 가득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맞은 편 사람에게 떠들고 있을 뿐인, 소란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도심의 커피숍에는 무의미한 젊음을 소비하기 위한 21세기의 이십대만 가득했다. 희망을 잃어가는 중년은 없었고, 이승만, 새마을운동, 유신 시대를 겪었던 과거의 기억을 마치 찬란했던 영화처럼 여기는 노년도 없었다. 그저 방향을 잃어버렸고 애초에 방향 따윈 없었던 이십대만 있었던 어느 커피숍에서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