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 6

바니타스 Vanitas

제프 쿤스도 그렇고 데미안 허스트도 그렇고 현대 미술에서 잘 나가는 스타 예술가들을 보면, 진지함보다는 번뜩이는 재치와 탁월한 유머와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과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풍부한 비평적 언어와 적절한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재/주제를 제시하고 어느 공간에서나 어울리면서 그 중심에 예술 작품이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든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궁금하게 한다. 예술작품 앞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사람이 무조건 한 두 마디를 말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실패하지 않는 작가가 된다. 다른, 심각하고 진지한 예술가 앞에 서서 현대 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현대를 가벼움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 현대의 공기일 것이다. 느린 속도는 태도의 진지함을 부르고..

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유혹에 대하여 De la se'duction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1. 철 지난 책을 읽었다. 작년에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읽다보면 반-페미니즘처럼 읽히기도 하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찝찝하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공격할 만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보드리야르는 여성의 유혹, 쾌락 등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유혹'의 관점에서 유혹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상징적 차원, 이론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그래서 일종의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말장난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를 분석하는 챕터에선 절정에 이른다고 할까. 보드리야르는 서문에..

두 개의 문장, 혹은 시뮬라크르로서의 세계

새벽에 잠을 깼다. 메일을 확인하고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만 늘어난다. 이 시대 탓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건가, 내가 유독 그런 건가, 이런 잡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잡은 책이 조중걸의 다. 나에겐 일종의 복습이고 반복이 되겠지만, 돌이켜보니, 서양미술의 역사에 빠져 공부하던 시절이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아리스토텔레스가 군사전문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불구'라고 조롱하면서 전인적 인간을 이상으로 삼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헉슬리Thomas Henry Huxle..

스펙터클 사회과 예술 실천 - 'noon'을 읽고

Noon 1호 - Noon 편집부 엮음/GB(월간지) 2009년에 창간호가 나온 후 소식이 없는 잡지 ‘noon -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and visual culutre’를 읽었다. 주제는 violence of the spectacle이다. 아마 몇 명은 바로 예상하겠지만, 이 주제는 기 드보르Guy Debord의 에서 언급된 그 스펙타클에 대한 것이다. 기 드보르는 이 놀라운 저작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스펙타클을 새롭게 정의 내린다. “스펙타클은 일련의 이미지들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 기 드보르는 이미지들로 구성되는 스펙타클이 아니라 감각적 이미지들의 구성체로서의 스펙타클이 지배하는 사회의 스펙타클 환경(상황)에 주목하고..

세계화의 폭력성,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의 사회학자. '시뮬라시옹'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학자이다. 나는 장 보드리야르의 암울한 사회 분석을 싫어했으며, 그것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끔찍함을 무시하면서 장 보드리야르를 전파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경멸했다. 그들 대부분이 의지하는 책이나 이론은 오직 시뮬레이션 이론이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극단적인 반-플라톤주의자이면서, (우호적으로 평가하자면) 마키아벨리와 같은 전도된 이상주의자였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희석되고,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사라지고 미디어들에 의해 새롭게 조작된 것들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하이퍼-리얼리..

무관심의 절정, 장 보드리야르

무관심의 절정 -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은민 옮김/동문선 무관심의 절정 장 보드리야르/필리프 프티와의 대담, 이은민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80 영화 의 주연 배우인 키아누 리버스는 장 보드리야르의 을 읽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국내 광고에서 본 것이긴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충격적이라는 것은, 내가 보기엔 그의 사상은 기존 관념이나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인 사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스타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과격한 논리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진지함과 성실함이 미덕으로 간주되어야 할 학문의 세계 속에서도 갈수록 말장난만 심해지는 이 사상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말장난은 언뜻 보기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