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4

비오는 토요일의 근황, 단상, 잡담

2019년 봄부터 2020년 2월까지 일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10억원이 넘어가는 프로젝트의 PM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Agile 방법론으로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켜야하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 읽기나 글 쓰기가 예전만 못했다. 다행(?)히 다시 연장된 프로젝트에 괜찮은 멤버들도 다시 셋팅할 수 있었기 망정이지, 계속 그 생활이 이어질 뻔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시 IT 영업과 컨설팅, 제안서 작성과 발표의 업무로 돌아왔지만, 역시 이 업무들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도 들고 대단한 미래가 보장되는 일상을 누리는 것도 아닌 탓에, 이런저런 준비도 같이 병행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코로나 시대, 외출이 부자연스러운 지금, 간만에 내리는 비소리를..

비는 더 이상 마음을 적시지 않고

내 마음에 비가 내리면 그대 마음에도 비가 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 낙엽이 지고, 두 번 낙엽이 지고, 또 낙엽이 지고, 지난 번 낙엽 질 때 나와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벚꽃 피고 지고, 봄이 가고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대 입술 옆으로 퍼지던 웃음의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던 여름날 그 바다 파도소리가 싱그러웠다. 그대 얇은 손길에도 가슴 조이며 땅 밑 뜨거운 용암의 흔들림을 느끼곤 했다. 그 열기에 내 마음이 녹아내리고 내 이성이, 내 언어가 녹아내려 흔적없이 사라지던 계절이었다. 그 계절이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또 가고, 더 이상 그 계절이 오지 않았을 때, 저 창 밖엔 거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지만, 그대 없는 내 마음엔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들..

blogging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벌써 2주가 지난 듯 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쓸쓸하기만 한 술과 가까이 지내고 육체를 돌보지 않으며 넓은 방안의 먼지들과 둔탁해지는 영혼을 보며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던지는 내 '가을의 잔잔한 물결'(秋波)은 번번히 우아하지 못한 몸짓을 보여주며 시간의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두운 미래 만큼이나 어두운 내 가슴의 그림자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화요일 비 소리는 종종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본 로만 오팔카의 그림을 보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로만 오팔카보다, 이우환보다 귄터 워커의 작품이 나에게 압도적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둔탁한 운동의 두께 ..

봄비, 술, 몇 가지 생각

어제 소리 없는 내리는 봄비 모습이 좋았고 오늘 창 틈으로 밀려든 봄날 스산함이 좋았다. 몇 가지 더 좋은 일이 봄바람을 타고 밀려들었으면 더 좋겠다.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장은 빈약해져가고 내 영혼은 가난함으로 물들어있다. 오랜 만에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었고 시디 케이스의 먼지를 닦았다. 밀린 신문을 읽으며 일을 했고 커피를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힘든 생활의 연속이지만, 잘 되거라 믿는다. 주중에는 시간을 내어 전시를 볼 것이고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생각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착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같이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Little Jack Melody의 'The Ballad Of The Ladies'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