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75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마음산책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Pol-Serge Kakon)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출처: http://i12bent.tumblr.com/post/242749612/jean-seberg-nov-13-1938-1979-was-an 그러고 보면 이 책의 독자는 정해져 있었다. 로맹 가리Romain Gary, 혹은 에밀 아자르Emile Ajar의 팬이거나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의 여 주인공 진 세버그Jean Seberg를 잊지 못하는 이들로. 그러나 이 두 부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재미있지 않다. 로맹 가리의 소설을 읽을 ..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장안의 화제가 된 책, 수전 케인의 'Quiet' 한글 번역본과 ... 그리고 진 세버그,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과 '새들, 페루에 가서 죽다'의 로맹 가리(혹은 에밀 아자르)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을 구입했다. 어제 주문하고 오늘 받았다. 일하는 도중에, 폴 세르주 카콩의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을 조심스럽게 뒤적이며, 내가 사랑하는 두 이름,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를 기억했다. 그간 로맹 가리의 자살을 그의 문학적 세계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겼는데, 실은 진 세버그였다. 20살 무렵 만났던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온 진 세버그. 진 세버그가 먼저 죽고(여러 번의 자살 시도가 있고 난 다음, 파리 근처에서 죽은..

로르까와 함께 5월 어느 오후

조심스럽게, 상냥한 오월의 바람이 녹색 이파리 끝에 닿자, 이미 무성해진 아카시아 잎들이 놀라며, 스치는 바람에게 지금 칠월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반팔 차림의 행인은 영 어색하고 고민스러운 땀을 연신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조한 거리를 배회하고, 길가의 주점은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며, 다가올 어지러운 마음의 밤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2년 5월 어느 날, 그 누구도 듣지 않고 말만 했다. 말하는 위안이 지구를 뒤덮었다. 아스팔트 아래 아카시아 나무 뿌리가 바람에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땅 위와 아래는 서로 교통이 금지되었고, 학자들은 그것을 모더니티로 담론화시켰다. (이제서야 로르카의 시가 읽히다니... 1996년도에 산 시집인데..) 연 가 내 입맞..

포용의 리더십, 아담 카헤인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Power without love is reckless and abusive, and love without power is sentimental and anemic" - Martin Luther King Jr.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힘이란 제대로 이해하자면 목적을 달성하는 역량일 뿐이다. 힘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 역사상 크나큰 문제 중에 하나는 사랑과 힘이라는 개념이 보통 반대되는 것으로 (그것도 완전히 극과 극으로) 대비되며, 그리하여 사랑은 힘의 포기와 동일시되고, 힘은 사랑의 부정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사랑이 ..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 김진영 지금도 이럴까? 하긴 지금은 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지역마다 지역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한때 슬프고 비극적이었으나, 이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을 해석하는 걸까. 영화는 유쾌하다. 작고 사소한 소재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마치 즐거운 순정 만화 같다고 할까.또한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이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로 포지셔닝되었고,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들로만 모든 것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그렇기에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그 두 지역의 갈등을 경험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걸어가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었다.

대출 기한을 넘긴 책을 도서관에 반납했다. 반납하는 내 손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발바닥에 굳은 살이 일어났다. 마치 지구 밑바닥을 흐른다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용암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표하듯, 2011년의 봄이 오는 속도로 굳은 살들이 허옇게 올라왔다. 나는 무인 대출반납기에 서서 책 한 권을 반납했다.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여러 차례 햇살이 비치는 곳과 그늘 진 곳을 번갈아가며 낡고 오래된 갈색 구두 굽이 보도블럭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구두굽은 보도블럭을 사랑하는가 보다. 그 소리가 그렇게 상쾌하게 들릴 수가. 회사 일 때문에 요 며칠 한남동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이태원에서 내려 한남동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커피 몇 잔을 사 들고 걸어갔다. 걸어가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어. 심지어 사랑마저도.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 운동하다가 무리한 것인지, 아니면 몇 가지 일들로 긴장한 건지, 허리 쪽에 근육통이 생겼는데, 이게 목까지 올라와 며칠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그랬으니, 이번 주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를 거느리고 잘 산 셈인가. 오늘이 되어서야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길, 텅 빈 집에 남겨질 만 여 권의 책들과 천 여장의 음반들, 동양난, 서양난 화분들과 아직 이름이 없는 금붕어 한 마리에 대해 생각했다. 참 부질없는 것에 나는 이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가령, ‘사랑’같은 것 아직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다. 주변 몇 명이 같이 책 읽자고 하는 바람에 시작하는 독서 모임이지만, 역시 뭔가를 제대로 하기란 어렵다. 기대한 ..

어느 월요일 새벽

일본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30년은 더 되었을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은 잘만 돌아가는데,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난 티악 시디플레이어는 요즘 들어 자주 지친 기색을 드러내었다. 하긴 나도 요즘 너무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지만, 쓰러지지 않는 걸 보면 나이를 괜히 먹은 것 같지 않다. 작은 회사에 들어와서, 기획에, 홍보마케팅에, PM에, 경영 관리에, 인사에, 영업에, …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다. 그런데 요즘 문득 내 자리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해졌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고객사를 2배로 늘렸지만, 온전히 내 성과로 보기 어렵다. 문서 작성이야 도가 텄지만, 과연 문서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젠..

그 후, 그들의 사랑은 아마도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쪽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