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5

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1.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

퇴근길 어둠 속의 마음

퇴근길 어둠이 행인의 발 끝으로 스며드는 오후 6시 24분. 어느 SF소설 속 백발의 과학자가 만들었을 법한 '마음 읽는 기계장치'가 내 손에 있다면, 내 앞으로 길게 이어진 건조한 도로 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할까? 그리고 읽는다면, 나는 무수한, 혹은 몇 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까? 21세기의 가을, 지구 위의 동물 중 유일하게 마음(mind)을 가졌다는 인간들은 지금 스스로의 마음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술집으로, 혹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겪는 곤혹스러움은, 내 옆을 지나는 그, 또는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이며, 아주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라는 생각의 빈번함이다. 왜 나는 그런 ..

가을 어느 날, 커피의 사소한 위안

가을 햇살이 비스듬하게 바람 따라 나풀나풀거렸다. 커피 향이 거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대비되는 빛깔끼리 대화하는 법이 없는 도시에는 외로움만 흘렀다. 투덜되는 쓸쓸함 앞에서 커피는 사소한 위안이 되었을 뿐, 결국엔 둥근 테이블 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푸른 하늘 위로 떠나버렸다. 가을이 왔다. 그리고 가을이 갈 것이다. 해마다 그랬듯이.

어수선한 세상 살이

2010년의 가을이 오자, 사무실 이사를 했다. 다행이다. 직장생활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좀 더 넓은 사무실로 옮겼다. 강남구 삼성2동.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높은 아파트들을 지나 근사한 빌라촌을 지나 있는 어느 흰 빌딩.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10월 초의 어느 날. 몇 해 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텔런트 고 장자연의 소속사가 있던 건물 근처다. 그 건물 앞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체계에 갇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혹은 치유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결국엔 세월이 약이라고들 이야기하겠지. 안 좋은 일이나 사건이 지나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곧잘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세월이 약일까. ..

강남으로 출근하다보니,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된다. 늦게 자면서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을 부러워 했는데,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하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을 청한다는 건 바쁜 현대인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나같이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인간에겐 특히나. 어제부터 삼성동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을 시작했다. 작은 Web Service 회사로, 전형적인 IT 기업이면서, Early Adopter와 Early Majority 사이의 캐즘(Chasm)을 넘지 못하고 있다. 캐즘을 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이 요구되는데, 그 전략의 일환으로 내가 합류하게 된 것이다. 뭐, 비즈니스의 근본은 다 비슷하고,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IT와 전략 컨설팅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그리고 미술 시장이 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