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3

짧은 생각,들

강렬한 더위가 이어졌다. 검은 도로는 불타고, 그 열기 앞에서 나는, 너는, 우리는 끝없이 움츠려 들었다. 그 거칠었던 폭염 전에는 긴 장마, 비의 계절이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의 원인은, 어쩌면 사유하는 나의 세계관, 근대 기계론, 혹은 도구적 이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젠 그것도 철지난 유행이랄까.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생각엔 예상치 못한 평화가, 큰 전쟁 없이 이어진 사오십년 동안 인간은 다시 오만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평화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고통받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 없지만.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죽였는가를 보았더니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냥 걸핏하면..

어떤 불투명함

뿌연 하늘 사이로 비가 내렸다, 한겨울을 시샘하듯. 저 멀리 솟은 빌딩의 불빛이나 지하철에서 나와 나에게 뛰어오는 연인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가 걷혔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불투명함이 있다. 찬란하게 맑은 세상을 흐리게 하는 불투명함. 거칠고 불쾌한 불투명함. 또는 어둡고 신비로우며 불길한 흐릿함. 산을 집어삼키고 마을을 집어삼키고 강과 바다 위로 드리워지는 불투명함이다. 반대로 바깥 세상에는 무관심해지며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불투명함. 외부와의 단절을 끊임없이 일으키기에 결국엔 자신만 남게 만드는 불투명함이다. 나를 향하며,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가늠하게 하고 그 곳을 공유했던 존재들과 사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불투명함, 종종 어떤 향기나 그립고 아련한 흔적으로 마음을 따스하게 하지만..

요즘, 책임에 대하여

젊었을 때는 자유를 이야기했으나, 나이가 들고보니, 자유보다 책임이 더 중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한국 교육은 '책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더라. 특히 '책임을 지는 자(리더)'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은 전무했더라(아니면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인지).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책임이 더 중요한데. 책임감이라곤 제로인데, 공부를 잘 했다는 걸로 리더가 되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요즘 이 나라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리더를 찾아보기 힘들구나. 하물며 작은 구멍 가게 사장도 저러지 않는데, 국가/정부의 장(리더)들이 왜 저러는지. 그리고 저런 사람들을 옳구나, 좋구나 하면서 뽑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세상은 좋게 변할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곳인 듯 싶다. 이러다가 브라질처..

어느 2월의 화요일

월요일 출근길, 몸이 무거웠다. 미세먼지로 가득찬 일요일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약 두 시간 정도의 운전, 약 삼심분 정도의 대기 시간 끝에 만난 도너츠 위의 말똥, 기름지고 맛있었으나, 살짝 비린내가 올라왔던 방어회, 소주 반 병, ... 일요일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왜 월요일 아침 피곤한 것일까. 소주 반 병 탓일까, 아니면 날 것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월요일 오전 회의 하나를 끝내고 휴가를 내어 바로 집에 들어와 누웠다. 계속 누워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누워있었다. 그리고 계속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계속 누워있을 수도 없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가끔 가던 피트니스 센터도 끊은 상태라...) 잠은 오지 않고 딴 생..

요즘 어떤 생각

1987년도에 번역 출판된 윌리엄 S. 버로우즈의 소설론을 구했다. 소설을 쓰지 못하니, 소설론만 읽는다. 세상은 바라지 않는 소설 같이 흘러가기만 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하늘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과 그들의 나팔수들은 한 줌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에게, 그래서 니네들은 미개하고 어리석다며,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꺼야라는 패배주의를 은연 중에 심어놓으며, 진실은 조작되었고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했다며 강변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거리 데모를 나간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나갈 생각이다. 세상은 바꾸는 건 깨어있는 시민이지, 그들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상처 입히고 우리들을 왜소하게 만들며 우리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며, 변하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강요하는 그들 앞에서 세상은 변하..

비즈니스 단상 2014-4-15

어제 퇴근길 지하철에 헨리 민츠버그의 을 펼쳐 뒤적였다. 서두에 코닥의 사례가 나오는데, 전략 경영 관련 부서들 -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부 등 - 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리서치, 시장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 전략 등을 수립해 보고하다 보니, 어느새 현장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책상에서 작성된 근거들로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코닥 같은 회사가 망하게 되는 이유라고. 이걸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고만 받으려고 한다. 실은 상당수의 보고서는 믿을 것이 못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업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80%가 보고서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결국 사업 추진자는 반드시 현장으로 몸으로 부대끼면..

흩날리는 봄날의 문장.들.

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

해마다 벚꽃이 핀다.

해마다 벚꽃이 피지만, 벚꽃을 대하는 내 마음은 ... 세월의 바람 따라 변한다. 오늘 아침 늦게 출근하면서 거리의 벚꽃을 찍어 올린다. 여유가 사라지고 마음은 비좁아지고 있다. 고민거리는 늘어나고 글을 쓸 시간은 거의 없다. 지금 읽고 있는 김경주의 '밀어'도 몇 주째 들고 다니기만 하고 있다. 초반의 독서 즐거움은 금세 지루함으로 바뀌고 블랑쇼나 투르니에 수준의 산문을 기대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김경주의 산문은 별같이 반짝이는 몇 부분을 제외하곤 그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봄이다. 주말에는 근교 교외로 놀러 나가야 겠다. 봄의 따스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내 육체 속에 그런 따스함을 밀어넣어야 겠다.

어느 토요일 새벽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빈둥거리고 있다. 일찍 자긴 했다, 아니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해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대로 한다면, 다소 출혈이 발생한다. 그 출혈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책임질 것인가, 아닌가. 적고 보니, 전형적인 천칭자리의 접근법이다. 늘 그렇듯이 해답은 알고 있다. 딱 내 수준이긴 하지만. 찍어놓은 사진들은 많은데, 한결같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들은 제작년 가을 경주 여행에서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