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25

듀안 마이클, 내 영혼의 먼지,들

듀안 마이클 Duane Michals. 그의 사진을 눈 그친 창 밖 화이트톤의 풍경과 대비해 본다, 읽는다, 느낀다. 시를 쓰며, 시인이었던 그녀에게 듀안을 아냐고 물었지만 모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각을 전공하고 디자인을 하던 그녀에겐 물어볼 새도 없이 철없던 날 버렸다. 그리고 몇 년을 울었다. 하지만 듀안을 알던 내 지인들은 모두 등단하지 못했고 그림은 접었고 아이 아빠가 되거나 결혼하지 않았다, 못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우리들의 호기심은 외부로만 향했을 뿐,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뒤범벅된 채로 듀안의 사진을 보며, 아, 어떻게 하면 소리없이 풍성해질까, 어떻게 하면 이 사소한 울적함마저 저 우주의 침묵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신비를 그녀의 신..

슬픔 속에서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분노하며 소리치고 목놓아 울음을 터뜨린다. 왜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었을까. 그것만 없었다만.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서 행진을 했고 일요일 오전 끔찍한 사고 소식을 보았다. 기운이 없었다. 지쳐 있었다. 힘을 내어야하지만, 내지 못했다. 주일 미사를 빠지고 재활용분리수거를 하였다. 책을 조금 읽었고 커피는 마시다 말았다. 아이는 영어 숙제로 힘들어했지만, 나의 도움은 필요없다고 화를 냈다.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ADHD 관련 책들을 검색했다.  노력한다는 건 무얼까. 나는 과연 노력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미켈란젤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믿는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살았다. ..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지음), 김설인 (옮김), 현암사 서문은 무척 좋았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집중되지 않았다. 결국 건성으로 읽게 되었다. 슬픔에 대한 것이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죽고 난 다음 몰아치게 되는 슬픔에 대한 글들이다. 나는 슬픔이라는 게 조금 더 추상적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어떤 부분을 건드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선 곁의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대한 위로, 위안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나에겐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읽혀졌다. C.S.루이스는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인용되는 글들 대부분 문학 작품으로 국한되었다. 가끔 음악이 등장하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슬픔의 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글일지 몰라도,..

흐린 하늘, 흐린 마음, 흐린, 흐린,

한동안 피프티피프티 노래를 들었는데,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했다. 그녀들의 인터뷰를 보며 성격들도 다 좋구나 생각했더니만, 다들 귀가 얇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신뢰(trust)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덕목이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대놓고 기버(Giver)가 되라고 조언했다. 우습게도 신뢰란 먼저 믿어줄 때 생기는 것이지, 신뢰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안타깝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피로도가 전 세계적으로 누적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어떻게든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할 것이고 이는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푸틴의 러시아도 비슷할 것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언제까지 ..

요즘, 책임에 대하여

젊었을 때는 자유를 이야기했으나, 나이가 들고보니, 자유보다 책임이 더 중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한국 교육은 '책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더라. 특히 '책임을 지는 자(리더)'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은 전무했더라(아니면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인지).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책임이 더 중요한데. 책임감이라곤 제로인데, 공부를 잘 했다는 걸로 리더가 되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요즘 이 나라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리더를 찾아보기 힘들구나. 하물며 작은 구멍 가게 사장도 저러지 않는데, 국가/정부의 장(리더)들이 왜 저러는지. 그리고 저런 사람들을 옳구나, 좋구나 하면서 뽑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세상은 좋게 변할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곳인 듯 싶다. 이러다가 브라질처..

술병이 있는 자화상, 뭉크

턱 밑까지 더위가 올라와 얼굴을 천천히 물들인다. 피곤한 피부 위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저주의 언어들, 혹은 절망, 아니면 실패자의 체념 같은 것. 발터 벤야민이었던가. 우리가 희망을 얻는 것은 과거의 불행했던 사람들로부터라고. , 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 작품을 그린 예술가는 참 불행하게 살다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 1863-1944). 하지만 의외로 평안한 노년을 보냈다. 몇 번의 사랑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낙담하지 않고 평생 혼자 지내며 작품활동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후기에 그렸던 작품들 대부분을 기증하여 뭉크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알려진 널리 그의 작품들을 보자면, 참 불안하고 슬프고 절망적이긴 하지만 뭉크는 다행히도 그 젊은 날의 불안, 격정,..

나의 사유 재산, 메리 루플

나의 사유 재산 My Private Property 메리 루플Mary Ruefle(지음), 박현주(옮김), 카라칼 그래서 경찰들이 내게 달리 할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 우리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그 말에 만족한 듯 보였다. 경찰들도 참, 그들은 모두 젊다. (15쪽) 결국 나(자아)를 알거나 너(타자, 외부, 세계)를 알게 될 뿐, 나와 너를 동시에 알고 받아들이진 못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 2층 카페 의자에 앉아 살짝 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찰들이 모두 젊어서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더 들었다면 만족하지 못했을 ..

이럴 땐 슬프지

2016. 06. 01. 이럴 때 어색하지, 그다지 좋지 못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풍경이 참 여유로워 보일 땐, 슬프지,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걸 가진 듯한 풍경 속에 있을 땐 참 슬프지, 너무 슬프지. 하나의 직선 양 쪽 끝에 서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다 부질없어,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아, 이젠 말라 흘릴 눈물마저 없어, 그럴 때 별안간 나타난 여유롭게 행복한 사각의 공간은 너무 어색해, 어색해, 찡그린 채 웃고 말지. 텅 빈 도로를 지나치는 바람이 반가워 손을 내밀지만, 그는 잡히지 않아, 바람이지. 모니터 속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지만, 우리의 웃음은 만나는 법이 없지.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녀지. 어느날 아이가 우주여행을 가겠다며 여행가방..

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1.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