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3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지음), 예담 연애의 기억일까, 아니면 사랑의 기억일까. 딱 세 명만 나오는 이 소설은 일종의 연애 편지이며,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배경 삽화에 머물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말줄임표가 유독 많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연애라고 할 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고,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결국 모든 것은 죽어 사라지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남긴 흔적이라는 건 우리 마음의 위로를 위한 변명거리일 뿐이다. 소설은 못 생긴 여자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지만, 실제로 그녀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녀가 못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도리어 내 경험 상 못 생긴 여자가 클래식 음악과 미술에 조예 깊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 김진영 지금도 이럴까? 하긴 지금은 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지역마다 지역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한때 슬프고 비극적이었으나, 이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을 해석하는 걸까. 영화는 유쾌하다. 작고 사소한 소재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마치 즐거운 순정 만화 같다고 할까.또한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이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로 포지셔닝되었고,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들로만 모든 것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그렇기에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그 두 지역의 갈등을 경험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봄날의 문자 메시지

군대를 벗어난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어느새 민방위이다. 넓은 영등포 구민 회관 입구 쓰레기통에다 민방위 관련 책자를 놔두고 왔다. 강당 앞쪽에 앉아 있는데, 몇 통의 전화가 왔고 몇 개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신기한 일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전화와 문자메시지. 보통 때라면 오지 않았을. 바람은 너울치듯이 나무가지 앉았다가 지붕에 앉았다가 전신주에 앉았다가, 그렇게 봄을 심어놓으면서 지나가고 도시의 퀘퀘한 매연 틈 속에서 햇살은 곧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후 두 시 반.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문제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그대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멍에가 되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 같아 미안하구요." 낯선 전화번호.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그리고 민방위 교육 사이 쉬는 시간, 누구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