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8

세상의 모든 시간, 토마스 기르스트

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지음), 이덕임(옮김), 을유문화사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산 작은 책. 의외로 재미있고 유용했다. 독후감을 쓰려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의 저자이기도 했다. 글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책은 작은 칼럼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된다. 문화 칼럼 정도라고 할까. 다양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읽을 만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하나로 모아지진 않는다. 현대 문화/예술에 대한 트렌디한 감각을 알 수 있지만, 거기서 멈춘다. 대단한 통찰을 얻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카페에 혼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의 시작은 상당히 좋지만,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흠이..

인공지능(AI)와 일자리

몇 주 전 리멤버*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MZ세대로 보이는 어떤 이가 고참 직원들(관리자들)은 AI를 통해 업무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나이 든 이들이 AI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리고 AI로 찾으면 바로 나오는 걸 자신에게 시킨다고 했다. 세상은 변하고 AI가 대세로 여겨지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방향일까.  오늘 페북에서 누군가가 레딧에서 올라온 글을 Chat GPT로 번역해 올렸더라. 내용은 미국의 지역 방송국 직원인데, 1명을 제외하고 스물여명이 일자리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AI 기반의 솔루션 회사가 스물여명이 하던 일을 AI 기반 솔루션이 다 처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은..

내일보다 나은 오늘이 존재한다면,

미래란 중요치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신탁의 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그만두게 되었으며, 별들은 이젠 하늘의 궁륭에 그려진 경탄할 만한 그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때만큼 큰 희열을 느끼며 섬들이 흩어져 있는 수평선 위의 창백한 새벽빛과, 끊임없이 철새들이 찾아드는, 요정들에 바쳐진 서늘한 동굴들, 황혼녘에 무겁게 날아가는 메추라기떼를 바라본 적은 그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나는 여러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었다. 몇몇 시인들의 작품은 옛날보다 더 좋아보였지만, 대부분은 더 나빠 보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쓴 시는 여느 때보다 덜 불완전한 것 같았다.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중에서  흔들리는 소음들도 가득찬 좁은 지하철 객차 안에서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저랬던 오늘이 있었나 생각했..

문득, 그리움

가을이 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바빴고 여유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했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한강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누구에게도 추천을 받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의 르 끌레지오를 사랑했지만, 그보다는 밀란 쿤데라가 받을 것이라 여겼다. 모디아노가 받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키는 받지 못할 것이며, 오에 겐자부로의 목소리는 일본 속의 소수자들을 대변할 뿐이었다.   창원에 내려와 도서관에 잠시 들렸다. 도서관 창으로 숲이 보이고 가을이 보였다. 고향 집으로 가면서 노란 은행잎을 책 속에 넣었다. 추억이 떠올라 슬펐다.

Paul Jaboulet Aine, Cotes du Rhone Parallele 45

폴 자불레 애네, 꼬뜨 뒤 론 빠할렐 45, 2021년Paul Jaboulet Aine, Cotes du Rhone Parallele 45, 2021 오랜만에 론 와인을 마셨다. 그르니슈 품종은 처음이다. 이 품종이 잘 숙성되면 타르와 가죽향이 난다고 한다. 그랬나 싶다. 그르니슈와 시라를 브랜딩한 와인으로 가격 대비 높은 품질로 많은 사랑을 받는 와인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술이라는 게 분위기(장소, 시간, 사람 등)을 타는데, 특히 와인이 이게 더 심하다. 좋은 와인을 마시더라도 제대로 된 분위기가 아니면 그 풍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심지어 몇 천원하는 멜롯 와인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한 적도 있었다. 며칠 후 다시 그 와인을 구입해 마시곤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Chateau du Bois de Tau 2019 샤또 뒤부아 드또

Chateau du Bois de Tau 2019 Cotes de Bourg, Bordeaux 보르도 레드 와인이다. 카베르네 쇼비뇽(20%)과 메를로(80%) 브랜딩으로 전형적인 보르도 와인의 풍미를 보여준다. 견고하며 밸런스가 좋다. 하지만 나는 금방 마셨다. 뒤늦게 후회하고 있지만, 늦었다. 최소 3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마셔야 된다고 한다. 다른 이의 리뷰를 보니.. 과연 그럴까. 결국 디켄팅을 권하는 와인이지만, 어느 정도로 풍미가 올라올련지는 지켜봐야 할 것같다.  방배동에 있는 와인샵에서 3만원 중반대로 구입했다. 적절한 가격이다. 세계적으로는 32불 정도로 거래되는 와인이라고 하니. 나쁜 와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와~ 하는 와인도 아니다. 디켄팅하여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프랑스 와인 좋아하..

Montes, Classic Cabernet Sauvignon

Montes Classic Cabernet Sauvigon 몬테스 클래식 카베르네 쇼비뇽, 2022   카베르네 쇼비뇽 85%, 메를로(Merlot) 15%를 브랜딩한 와인이었다. 나는 카베르네 쇼비뇽 100%라고 여겼다. 하긴 그런 거 치고는 카베르네 쇼비뇽 특유의 느낌이 상당히 약해 의외로 밸런스를 잘 맞추었다고 생각했다. 메를로 15%라는 걸 알고 난 다음, 내가 느낀 것이 당연했나 싶기도 하다. 프랑스 와인들 대부분이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를 브랜딩한다. 여기에다 카르미네르까지 섞기도 한다.  그래서 이 와인은 칠레산 와인이지만, 상당히 구대륙적 느낌을 가진 와인인데, 그것도 잘 만들지 못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밸런스는 좋으나, 상당히 가볍워, 날라다니는 느낌이다. 잘 만든 뻬..

침대에서 누워 듣는 음악, Men i trust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들을 때의 그 우울함이란!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끝없이 억누르고 방바닥과 하나가 되어 방바닥의 외로움을, 그 침묵의 고독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할 때 사각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어떤 규칙적인 소리들. 그러고 보니, 최근 몇년 동안 누워서 음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누워있을 필요는 없지만, 누워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건 사실이니까.  최근 자주 드는 밴드다. 그냥 노곤해진다. 온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듯한 봄날 오후 햇살 같다. 그것도 밝은 세상이 아니라 살짝 어둡고 흐릿한 햇살. 술 생각은 나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도 귀찮게 하는. 살짝 무책임해지는 음악이랄까.    이런 음악을 'Bedroom Pop'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