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마 4

비는 더 이상 마음을 적시지 않고

내 마음에 비가 내리면 그대 마음에도 비가 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 낙엽이 지고, 두 번 낙엽이 지고, 또 낙엽이 지고, 지난 번 낙엽 질 때 나와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벚꽃 피고 지고, 봄이 가고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대 입술 옆으로 퍼지던 웃음의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던 여름날 그 바다 파도소리가 싱그러웠다. 그대 얇은 손길에도 가슴 조이며 땅 밑 뜨거운 용암의 흔들림을 느끼곤 했다. 그 열기에 내 마음이 녹아내리고 내 이성이, 내 언어가 녹아내려 흔적없이 사라지던 계절이었다. 그 계절이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또 가고, 더 이상 그 계절이 오지 않았을 때, 저 창 밖엔 거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지만, 그대 없는 내 마음엔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들..

요즘 어떤 생각

1987년도에 번역 출판된 윌리엄 S. 버로우즈의 소설론을 구했다. 소설을 쓰지 못하니, 소설론만 읽는다. 세상은 바라지 않는 소설 같이 흘러가기만 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하늘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과 그들의 나팔수들은 한 줌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에게, 그래서 니네들은 미개하고 어리석다며,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꺼야라는 패배주의를 은연 중에 심어놓으며, 진실은 조작되었고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했다며 강변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거리 데모를 나간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나갈 생각이다. 세상은 바꾸는 건 깨어있는 시민이지, 그들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상처 입히고 우리들을 왜소하게 만들며 우리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며, 변하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강요하는 그들 앞에서 세상은 변하..

요요마의 바흐, 비올라 다 감바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1983년에 나온 LP를 가지고 있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LP를 구입한 건 90년대 중반쯤 되었을 테니, 창원의 어느 상가, 문 닫기 직전의 음반 가게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레코드였다. 하지만 이것이 내 바흐 순례의 시작이었으니, 어찌 그 감동을 잊을 수 있을까. 낮게 깔리는 첼로의 선율을 위로 얇게 올라가 물방울 흘러가듯 부딪히는 하프시코드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율동과 운동감을 전하는 바로크 음악의 열정을 숨기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어느 모바일 게임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이력서를 다시 업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미술 쪽은 애호가나 개인적인 일로 돌려야 할 듯 싶다. 일자리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

예술의 우주 2008.11.17

일요일 밤, 그리고 요요마의 탱고

드디어 책상 스탠드 불빛이 반가운 계절이 왔다. 스탠드 불빛의 독특한 열기는 서늘한 밤공기가 밀려드는 때야 비로소 나의 즐거움이 된다. 어둠 속에 반쯤 묻힌 서가의 책들, 어지러진 팜플렛과 도록들, 읽다만 신문들, 그리고 요요마의 탱고가 흐른다. 추석이 지나고 광주에 잠시 들려, 몇 분의 작가들을 만났고, '포플레이'라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보는 린LP12 턴테이블. 아직까지 린LP12 턴테이블의 명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린LP12 턴테이블이 유명하게 된 것은 CD의 음질이 낫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사람들이 이게 LP 소리가 맞느냐고 반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리가 탁월하고 안정적이다. 나는 이 곳에서 찰스 밍거스를 오랜만에 들었다. 하지만 아직 린LP12 턴테이블은 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