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10

타이탄의 도구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Tools of Titans 팀 페리스(지음), 박선영, 정지현(옮김), 토네이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지혜로워지지도 않고 많이 알게 되지도 않고 도리어 체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며 나이 든 위세만 챙기려 하면서도 눈치만 보게 된다. 나이 드신 부모님, 아내의 눈치나 아이의 눈치,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의 눈치, 고객들의 눈치를 본다. 나이에 대한 오래된 비유는 지금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일찍 읽었다면 내 삶이, 내 일상이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했지만,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 게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무렵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었지만, 재미없었고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흔을 넘기고 읽었더니, 구구절절 나에게 필요한 문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 늦..

창을 열면, ...

팔을 들어 길게 뻗어 책상 너머 있는 창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공기를 보며 바람이라고 썼지만, 그냥 온도 차이로 생긴 공기의 사소한 흐름일 게다. 밤새 닫아 두었던 서재의 창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내가 지내온 서재, 혹은 책들이 모여 있던 곳의 창 밖 풍경은, 대체로 건조한 무채색이다.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서재는 딱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들은 모두 벽들 뿐이었다. 지금 서재 창 밖은 바로 옆 빌라의 측면 외벽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창들이 있는. 서재에서 이십미터 정도 걸어 나가면 마을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그 곳으로부터 다시 이십미터 정도 나가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 다시 그 곳으로부터 이십미터 정도 가면 지하..

기다림

기다림은 시간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느린 걸음이다. 동시에 마음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심적 동요이기도 하다. 그것은 너무 미세해서 알아차리기 힘든 진동이자 떨림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예측가능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희망이라든가 바람만 있을 뿐. 몇 분, 혹은 몇 시간 후, 또는 더 먼 미래의 어떤 결론을 알지 못하기에 기다림은 모험이며 방황이며 결국 우리의 영혼에게 해악을 끼칠 위험한 존재다. 그러면서 기다림은 누구, 언제, 어떤 일로, 어떻게에 따라 그 무늬와 색채가 달라지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기다림은 다채로운 변화이며 파도이고 햇빛이 잘게 부서지는, 빛나는 물결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별의 운동처럼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만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

희랍 철학 입문 -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서광사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지음), 박종현(옮김), 종로서적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1년 초판의 1997년 17쇄본이다. 그리고 서광사에서 다시 나왔으니,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건 그만큼 학생이 읽기 최적의 책이라는 셈일 게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희랍적 사고 방식- 질료와 형상- 운동의 문제- 휴머니즘으로의 반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은 철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 중의 하나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사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이야기하듯, 플라톤 철학은 철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면, 플라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희랍(그리스) 철학 전반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변화

오늘도 새벽 5시에 잠을 깼다. 무슨 이유에선지, 요즘 들어 새벽에 반드시 잠을 깬다. 생활을 바꾼 탓인가. 실은 지난 주부터 자정에서 새벽 한 시 사이에 반드시 잠자리에 들며, 오전 8시가 되기 전에 눈을 뜬다. 오늘 아침엔 7시가 약간 지난 시간에 일어나, 곧바로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을 했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운동을 했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최근 생활을 바꾸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나에게 알람시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난 정확하게 하루에 7시간을 잠을 잔다. 그래서 언제 잠을 잤는지 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7시간 이후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술을 두 번 마셨으나, ..

일상

파리에 계신 작가의 메일을 받았다. 내년 2월에 일본으로 간다고 하니, 내년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것같다. 남편은 프랑스 작가인데, 7~8미터 길이의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동경에 계신 noi님께도 연락해야지. 아참, 아직 책을 읽지 못했다. 빨리 읽고 서평을 올려야 겠다.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할 책임을 알기에 좀 태평스러웠다. 서문은 읽고 서가에 놓아둔 상태다. 이젠 시차엔 적응한 것같은데, 잠자는 시간을 놓치면 잠을 통 자지 못한다. 오늘도 벌써 새벽 두시 반이다. 오후엔 오랜만에 옷을 샀다. 겨울 옷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없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운동화라기 보다는 트래킹화. 피트..

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Atta Kim: On-Air 2008.3.21-5.25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

레베카 호른 Rebecca Horn 展

레베카 호른 Rebecca Horn 展 로댕갤러리 2007. 5. 18 - 8. 19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모르는 ‘시간의 배’에 승선해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달은 것은 몇 세기가 채 되지 않는다. 사상의 영역에서 시간과 운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진리는 시간을 떠나 영원성에 속해 있는 것이며 변하지(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세계 속에서 플라톤은 한시도 이데아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고대를 지나 중세는 전지전능한 신을 내세웠고 이는 근대 초까지 계속 되었다. 시간과 운동은 하나의 짝이다. 이 둘은 사상의 영역에서처럼, 예술의 영역에서도 같이 등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주제를 담당한다. 레베카 호른의 작업들은 시간과 운동 속에서..

가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한 후회나 상심, 식어버린 열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종종 발을 헛딛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소설을 쓰기 위해 몸부터 만들었던 마루야마 겐지처럼. 점심식사 시간에 사무실 근처 피트니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빠듯한 시간이긴 하지만, 집 근처에 있는 곳은 시설이 너무 열악했고 퇴근 후에 가자니,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면 아홉시, 열 시가 되어버려, 점심 시간을 활용하였다. 상수역 옆에 있는 곳인데, 시설이 나쁘지 않다. 대신 직장인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 비가 온다. (상쾌한 봄비를 기대했지만,) 뿌연 먼지를 머금은 채로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뿌옇게 변해가는..

From 11:00 P.M. to 0:00 A.M.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 운동을 했다. 근육질 몸매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도, 그걸 원하는 것같지도 않다. 그저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편해지고 편해진 몸을 따라 마음도 따라 편해진다. 불편함들이 혹사시킨 육체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활짝 깨어있는 봄밤의 육체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고 육체는 깨어있고 정신은 수면을 향해 내려앉을 때, 반드시 가위에 눌린다. 가위에 눌리지 않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새벽, 한 두 차례 잠에서 깼고 흐릿한 대기 위로 내 바램들이 사라지는 걸 기억해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