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22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구정은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구정은(지음), 후마니타스 사라지고 버려지고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만 씌여진 책이다. 호수가 말라가고 대지가 바다에 잠기고, 플라스틱과 비닐이, 먹지도 않은 음식물이 버려져 폐허처럼 쌓여갈 때, 그 옆에선 국적없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다 우리 탓이다. 이 시대의 문명, 도시, 자본주의로 인해 사라지고 버려지고 남겨져, 저기 저 곳에 갇힌 채 사람들은 가난과 분쟁, 폭력과 억압, 그리고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다가 고대 문명의 폐허 속으로, 혹은 현대의 부유하는 쓰레기들과 함께 잊혀질 것이다. 출처: https://www.travel-in-portugal.com/beaches/praia-do-barril.htm 포르투칼의 타비라섬은 바닷가 모래 밭에 녹슨 닻 수백 개가 꽂혀 있..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박종훈(지음), 21세기북스 몇 해 전에 나온 책을 이제서야 다 읽는다. 이미 칼럼을 통해 박종훈 기자의 통찰력 있는 글들을 읽었던 터라,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복습하는 느낌이었다. (칼럼 주소: http://news.kbs.co.kr/news/list.do?mcd=0849#1) 유명세를 치른 책이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테고, 읽은 사람들은 다 읽었을 것이다.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들은 내가 아니라 저 쪽에 있는 사람들인데. 흥미로운 것들은 경제전문기자(실은 박종훈 기자만 말하겠는가!)가 지적하는 사항들과는 정반대로 국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홍보하고 대단한 성과를 내는 것처럼 포장하는 여러(더 많겠지만) 잘못된 정책들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

토레 다비드 - 수직형 무허가 거주 공동체

토레 다비드 - 수직형 무허가 거주 공동체Torre David: Informal Vertical Communities알프레도 브릴렘버그 등 저, 김마림 역, 미메시스 이 책은 토레 다비드(Torre de David(the Tower of David), Centro Financiero Confinanzas)라는, 금융위기로 미완성된 초고층 빌딩이 어떻게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의 거주지가 되었고, 이 건물이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수행하기 위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기록하고, 어떻게 발전해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베네주엘라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초고층 건물에 집을 구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모습은 위험천만한 일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벚꽃과 술

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제프리 밀러(지음), 김명주(옮김), 동녘사이언스 스펜트 -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동녘사이언스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서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소비 행위에 대한 진화심리학자의 해석서? 여하튼 책은 무척 재미있다. 책 표지에 적힌 말대로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다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대의 소비주의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과시적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짝짓기의 열망'으로 이어진다(짝짓기의 보이지 않는 열망이 인간의 ‘과시적 행위’를 불러일으키고 현대 사회의 소비 밑바닥에는 이러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 마치 공작의 꼬리가 살아가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이번에도 논쟁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편가르기가 아니다. 편가르기 전에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전초전의 의미를 띈다. 편이 나뉜 뒤에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기 때문에, 대화나 협상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협상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까지도. 이 또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빨리 결론을 내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장하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먼저 편가르기부터 하고 있다. (1) 그리고 그 편가르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하준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유별나다. 장하준의 ..

발명의 대부분은 전쟁을 위한 것.

제목을 적고 보니, 인터넷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범용화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심지어 웹브라우저에 적용되는 암호화 기술들도 모두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요즘은 일반화된 암호화기술들 대부분이 예전에는 극비를 요하는 기술들이었다는 걸 보면, 피터 W. 싱어가 말했듯, 우리 인류는 전쟁과 매우 밀접한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발명하기를 좋아하지만, 발명은 대부분 전쟁을 위한 것이란 게 나의 무서운 깨달음이다.” 얼마 전 읽은 주간지에 실린 피터 W. 싱어와의 인터뷰는 나로 하여금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라크에서 용병은 19만 명인데, 미군과 연합군을 모두 합친 18만 명보다 많다. 아프간엔 10만 명의 용병이 있는데, 전체 외국군 숫자..

후기 마르크스주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한길사 후기마르크스주의 Late Marxism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그레이트북스 몇 달 전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딱딱하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론서를 읽기에는, 내 독서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완독하기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로 가득 찬 프레드릭 제임슨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하지만, 아도르노는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벤야민에게서 영향 받았겠지만, 실은 벤야민의 독특함 이상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상한 선호(대중적 인기)로 인해, 아도르노는 종종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프레..

달러, 엘렌 호지슨 브라운

달러 -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이른아침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는 단일 통화 시스템(유로)을 설계하는 데 조언을 하고 통화 개혁에 관한 책도 몇 권 썼다. 그는 이자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은행이 당신에게 담보 대출로 10만 달러를 주었다면 거기서는 원금만 발행한다. 그 돈을 당신이 소비하면 사회 안에서 유통된다. 은행은 당신에게 앞으로 20년에 걸쳐 20만 달러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 달러, 즉 이자 부분은 은행이 발행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 나머지 10만 달러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주화를 제외한 모든 돈이 은행의 대출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저의 대출..

광화문 스타벅스 - 8월 17일 오후 네 시,

8월 17일 오후 네 시, 광화문 스타벅스. 소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곳이다. 천정에 매달린 스피커의 쓰임새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 곳은 소리와 타인에게 무신경한 서울 사람들의 비정함으로 빼곡히 매워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지독한 소음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상상, 외부를 향한 사소한 관심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곳은 차가운 원두커피를 마시기 위해, 8월 서울의 타는 듯한 열기를 피하기 위한 사소한 희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 1초라도 쉬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숨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과 용기로 충만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심지어 이 곳에 앉아있는 내가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 보이는 이 공간은, 시대의 몰락을 향해 가는, 우울한 대도시의 풍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