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19

벚꽃과 술

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제프리 밀러(지음), 김명주(옮김), 동녘사이언스 스펜트 -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동녘사이언스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서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소비 행위에 대한 진화심리학자의 해석서? 여하튼 책은 무척 재미있다. 책 표지에 적힌 말대로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다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대의 소비주의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과시적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짝짓기의 열망'으로 이어진다(짝짓기의 보이지 않는 열망이 인간의 ‘과시적 행위’를 불러일으키고 현대 사회의 소비 밑바닥에는 이러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 마치 공작의 꼬리가 살아가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이번에도 논쟁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편가르기가 아니다. 편가르기 전에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전초전의 의미를 띈다. 편이 나뉜 뒤에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기 때문에, 대화나 협상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협상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까지도. 이 또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빨리 결론을 내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장하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먼저 편가르기부터 하고 있다. (1) 그리고 그 편가르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하준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유별나다. 장하준의 ..

발명의 대부분은 전쟁을 위한 것.

제목을 적고 보니, 인터넷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범용화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심지어 웹브라우저에 적용되는 암호화 기술들도 모두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요즘은 일반화된 암호화기술들 대부분이 예전에는 극비를 요하는 기술들이었다는 걸 보면, 피터 W. 싱어가 말했듯, 우리 인류는 전쟁과 매우 밀접한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발명하기를 좋아하지만, 발명은 대부분 전쟁을 위한 것이란 게 나의 무서운 깨달음이다.” 얼마 전 읽은 주간지에 실린 피터 W. 싱어와의 인터뷰는 나로 하여금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라크에서 용병은 19만 명인데, 미군과 연합군을 모두 합친 18만 명보다 많다. 아프간엔 10만 명의 용병이 있는데, 전체 외국군 숫자..

후기 마르크스주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한길사 후기마르크스주의 Late Marxism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그레이트북스 몇 달 전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딱딱하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론서를 읽기에는, 내 독서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완독하기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로 가득 찬 프레드릭 제임슨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하지만, 아도르노는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벤야민에게서 영향 받았겠지만, 실은 벤야민의 독특함 이상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상한 선호(대중적 인기)로 인해, 아도르노는 종종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프레..

달러, 엘렌 호지슨 브라운

달러 -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이른아침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는 단일 통화 시스템(유로)을 설계하는 데 조언을 하고 통화 개혁에 관한 책도 몇 권 썼다. 그는 이자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은행이 당신에게 담보 대출로 10만 달러를 주었다면 거기서는 원금만 발행한다. 그 돈을 당신이 소비하면 사회 안에서 유통된다. 은행은 당신에게 앞으로 20년에 걸쳐 20만 달러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 달러, 즉 이자 부분은 은행이 발행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 나머지 10만 달러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주화를 제외한 모든 돈이 은행의 대출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저의 대출..

광화문 스타벅스 - 8월 17일 오후 네 시,

8월 17일 오후 네 시, 광화문 스타벅스. 소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곳이다. 천정에 매달린 스피커의 쓰임새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 곳은 소리와 타인에게 무신경한 서울 사람들의 비정함으로 빼곡히 매워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지독한 소음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상상, 외부를 향한 사소한 관심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곳은 차가운 원두커피를 마시기 위해, 8월 서울의 타는 듯한 열기를 피하기 위한 사소한 희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 1초라도 쉬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숨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과 용기로 충만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심지어 이 곳에 앉아있는 내가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 보이는 이 공간은, 시대의 몰락을 향해 가는, 우울한 대도시의 풍경을, ..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편저), 박찬욱/형선호/홍윤기/최형익(옮김), 생각의나무, 2000년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과연 몇 명쯤 ‘좋다’라고 답할까. 그렇다면 나쁜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편파적인 책이다. 윌 허튼은 분명한 어조로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고 앤서니 기든스도 그것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습게도 이 책에 정답은 없다. 아마 정답이 나와있는 책은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먹어치워 버리는 현대 자본주의가 그 정답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좌파, 또는 중도 좌파의 시각이 아닌..

19세기와 20세기의 미학

11장 예술가와 사회 19세기의 특징 - 18세기에게 본격적으로 등장한 부르주아가 확고한 기반을 다짐 - 패트론 제도가 유명무실화됨: 19세기적 상황이라기 보다는 17세기부터 진전되어왔으나 18세기 후반부터 계급 갈등이 본격화되고 세속화가 첨예한 형태로 진행됨 - 이 상황 속에서 부르주아의 속된 취미에 봉사하는 예술 양식이 유행하게 됨 - 인상주의자들의 성장 배경을 형성함. 예술가의 자의식 -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현실 세계를 폄하하고 벽을 쌓아올림. - “가령 셸리의 ‘민감한 식물sensitivie plant’, 비니(vigny)의 요람Moise, 보들레르의 거대한 날개 때문에 땅 위를 걷지 못하는 신청옹albatross 등이 이러한 예술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