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5

우리의 사이와 차이, 얀 그루에

우리의 사이와 차이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옮김), 아르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두 명을 떠올렸다. 한 명은 알렉상드르 졸리앙, 나머지 한 명은 루이 알튀세르.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졌으나, 장애와 함께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열정과 희망에 이야기하는 알렉상드르 졸리앙. 그의 책들은 명상적이며 소박하며 초월적이다. 현대적이지 않고 도리어 중세적 열정과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루이 알튀세르는 사랑하는 아내 엘렌를 목 졸라 죽인다. 평생 우울증과 싸웠으나, 20세기 후반 최고의 마르크스 이론가였다고 하면 이상할까. 어쩌면 그가 새롭게 해석한(혹은 이종교배한) 마르크스 이론으로 인해 강렬했던 마르크스주의가 퇴색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정신 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죽인(살해한) 끔찍한 사건 속에서 ..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구토 -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

불안한 현대 사회,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이학사 현대사회, 특히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를 매우 충실하면서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 하지만 찰스 테일러에게서도 실망스러운 한 가지.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에 우린 너무 깊이 개인주의 속으로 들어와버렸다는 사실. ---- 위의 짧은 글은 몇 년 전에 노트해 둔 글이다. 이것만 올리면 성의 없어 보여 다시 몇 줄 더 넣었으나, 더 성의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대로 정리해본다. 가라타진 고진의 첫 머리에 '독아론(Solipsism)'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쉽게 말해서 '나만 있고 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데카르트와 같은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나만 있는 세계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를 정립해나간다..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루이지 피란델로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김효정 옮김/문학과지성사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926.(김효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