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8

여름 휴가

잠시 집 밖으로 나갔다가 땀에 젖어 들어왔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던킨도너츠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왔다. 드립 커피를 내려 먹을까 하다가, 그냥 샀는데, 탄내가 훅 올라왔다. 불쾌한 느낌까진 아니지만, 원두 특유의 향을 해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이런 커피를 마실 때마다 부주의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개시하기 전에 마셔보면 알 수 있으니, 원두를 다시 섞는다거나 반품하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민감한 건가.  기후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이슈다. 위기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하긴 한국은 독재화 진행 국가로 이름을 올린 채, 뭐, 그리 잘났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알 턱 없구나. 한 정부의 여러 잘못들은 십년이나..

작은 화분

화분을 샀다. 서양란이 이쁘고 화사했다. 그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 한 번 만나고 전화 통화를 몇 번 한 것이 다였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친구 관계 이상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은 거짓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컴컴했던 방안에 있다가 결국 그 서양란은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십오년 전쯤 일이다. 그녀와는 몇 번 전화 연락을 한 것이 다였지만 보기 드문 이름이기도 해서 아직도 기억나는 이름. 한 때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여겼는데,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외로움은 별개더라. 이젠 예전만큼 술을 마시지도 못해, 최근 1달 정도 외부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즐거운 술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

토요일 출근

지하 1층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고 쓸쓸하다. 텅빈 주말의 프로젝트룸은 예전과 같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던 이들도 이젠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 한 두 명씩 주말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주말 출근하는 이들만 호구처럼 보이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관리자나 성실한 정규직 직원만 가끔 주말 출근을 한다.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여의도 쪽 프로젝트만 하게 되었다. 원래 업무가 프로젝트 관리가 아닌데, 누군가 잘못하면 내가 가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잘 할 수 없기에,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둘러쌓인 환경에 놓여져 있다. 꿈은 멀리 사라지고, 그 멀어진 거리만큼 내 피부는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졌..

음반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

몇 번의 이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생의 변화 앞에서 음반들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자신들의 소리를 보여줄 도구들마저 없었을 때, 아마 그들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주중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토요일 오전, 음반들 한 무더기를 꺼내 한 번 정렬해 보았다. 다들 오래된 음반들이다. 심지어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한 음반도 눈에 보이지만, 몇 번 들었던가, 언제 마지막 들었던가, 그런 기억마저도 없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알아줄 이를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그건 그녀도, 그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알리고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구차하고 쓸쓸한 일인가를, 한 번이라도 ..

이런 봄날이었을까

이런 봄날이었을까, 가벼운 흰 빛으로 둘러싸인 꽃가루가 거리마다 마을마다 흩날리던. 내가 앙드레 드 리쇼의 을 읽고 아파했던 날은. 아주 오래 전이었다. 결혼하기 전이었고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지금도 있으려나, 그래서 봄이면 가슴이 설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금기). 그리고 그 환상으로 사랑을 잃어버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으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사랑에 대해선 더더욱 까막눈이었다(지금도 그런 듯). 그 때 그 시절, 나는 을 읽었다. 기묘하고 아름답고 슬펐다. 알베르 까뮈가 격찬했고 조용히 번역 출판되었다가 거의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진 소설이었다. 몇 해 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나만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기억을 더듬을 ..

동네 카페

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토요일, 이른 오후의 외출

창 밖으로 불상들이 보였다. 파란색 카디건 안에 숨죽이고 있던 땀이 올라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차가운 목소리를 가진 커피숍 아가씨가 내 대답을 받아주었다. 한남동이다. 나에게 조금 익숙한 신동빌딩이 있고 그 빌딩 일층엔 언제나 가고 싶은 와인샵이, 그 옆으론 BMW도이치모터스 한남전시장, 그리고 할리데이비슨 코리아가 있었다. 봄이라고들 말하지만, 봄은 중년 사내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겉돌고 있기만 하다. 하긴 어느 해의 봄인들, 지쳐가는 중년을 즐거이 맞이할까. 봄은 화려한 사랑을 꿈꾸는 처녀들과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모험과 도전만 있다고 믿는 청년들만 반길 뿐이다. 테이블 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떨어뜨렸다. 고요하던 커피숍 안으로 떨어지는 책..

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

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의 시작은 우아하면서도 격조있는 애잔함으로 시작한다. 참 오래만에 듣는다. 잊고 있었던 선율을 다시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구나. 바렌보임의 지휘 대신 첼리비다케의 지휘 음향을 공유한다. 바렌보임의 지휘보다 좀 더 긴장감이 더 있다고 할까. 그런데 슈베르트스럽지 못한 느낌이다. 낭만주의적이어야 하는데, 첼리비다케는 각이 잡혀 있는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다행히 바렌보임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책도 예전만큼 읽지 못하고 음악도 예전만큼 듣지 못하는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시절이 나에게 닥쳤고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 오후와 저녁은 슈베르트와 함께 보내야겠다. 찾아보니, 이런 게..

비 오는 토요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 식사를 하며, 소주를 마시며, ... 토요일 출근 풍경은 이루어졌다. 어찌된 일인지,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내가 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접적인 불만은 아니고, 일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원칙을 떠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종의 압박 비슷한 것이다. 그만큼 불만이 많은 셈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에 두 세 권 이상의 책을 읽고 다양한 잡지와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는데, 입사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놀면서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읽는 경우에는 가벼운 소설책이거나 자기계발서가 전부다. 아찔하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문적인 능력이 아니라, 전문적인 능력을 언제 어디에서나 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