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2

현기증의 하루.들.

매일 팀원들과 하루 일과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름하여 일일보고서. 그런데 그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쓴 게 2주 전이었다. 그 사이 나는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했다. 상당량의 스트레스가 육체를 자극했고 적당한 고립감과 쓸쓸함이 내 사무실 책상 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형 IT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거의 혼자서 썼고, 어제서야 비로소 제안 발표를 했다. 아직도 400명 앞에서 벌벌 떨며 했던 발표가 기억에 선한데, 지금은 제안 발표 때 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긴장하지 않는다는 건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초부터 침대에 누우면 현기증이 심하게 일었다. 마치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위에 몸을 실은 듯이. 노년의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공중곡예사, 폴 오스터

공중 곡예사 -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 Mr.Vertigo, 열린책들. '공중곡예사'라는 번역 제목은 썩 성공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미스터 버티고'나 '현기증씨'가 낫지 않을까.(그만큼 이 소설 속에서 '현기증'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 속에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주인공 인생에 있어 한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건네준 빨간 포장의 말보루를 가슴 깊숙이 삼키고 난 다음 펼쳐지는 거리 풍경과 팽창하는 동공과의 거리 변화 따위나 대학 때 옆에 사모하는 여자를 앉히고는 연거푸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을 여러 잔 마시고 손을 뻗쳐 그 여자의 얼굴 위로 갖다댈 때, 손가락 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