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F
비가 내릴 듯한 색채의 대기 - 흐린 날씨. 북쪽 대륙으로부터 밀려든 짙은 구름들. 거친 아스팔트 도로 옆의 커피숍. 일요일 오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전시를 보는 것이 이젠 특별하게 변해버린 어느 직장인의 일요일 오전. 조르주 루오를 그 때 만났다.
전시장 입구는 인파로 빽빽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조르주 루오를 만나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다니! 하지만 아니었다. 1층에 인상주의 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 미술관 앞 길게 늘어선 줄은 서울이 마치 대단한 예술의 도시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 열기가 다른 전시들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조르주 루오는 우리에게 ‘야수파’로 알려진 화가다. 앙리 마티스와 더불어. 이번 서울 전시는 그의 신앙을, 근현대 예술이 신앙을 이야기할 때,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를 알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였다.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은 매혹적이었다. (앙리 마티스도 말년에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에 매달렸다)
종교가 성행하지만, 종교 시설이 늘어나지만, 진정한 신앙인은 만나기 드물어진 요즘, 루오의 작품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기 충분했을 것이다. (내가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노력한 듯한 전시에 찬사를 보낸다.
굵은 터치의 누드는 루오의 타고난 형태 감각이나 조형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루오는 강렬한 색채와 굵은 터치의 질감과 조형미로 보는 이를 사로잡고 있었다.
루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이다.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Christ a la colonne, 1939년도 작품
- 루오는 중세 시대를 좋아했다. 그는 위대한 걸작은 노동조합에 속한, 서명을 남기지 않은 성당의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고 여겼으며, 스태인드 글라스는 그의 동반자였다. '그렇게 솔직한 유리에 나는 자주 손을 베곤했다. 그리고 복원해야 할 몇몇 옛 작품 앞에서, 아직 아이였던 나는 그렇게 훌륭한 동반자와 있는 것 같이 느껴야 하는 것에 겁이 났다'(1943년)
* 도판의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 올립니다. 생각보다 도판이 깨끗했고 해설도 매우 충실했습니다.
*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득하지 않았으며, 조르주 루오가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