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이사와 근황

지하련 2018. 11. 15. 13:01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쳤다. 결국 감행했다. 그리고 책을 버렸다. 백 권 넘는 책들을 버렸다. 어떤 책은 지금 구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책은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한 것이다. 책마다 사연이 있고 내 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인집 할머니의, 폐기물 사업을 하는 지인이 가지고 가기로 하였으나, 몇 주 동안 그대로 있길래 동네 헌책방 아저씨를 불렀다. 아침 일찍 아저씨는 작은 자동차를 끌고 와서 책을 살펴보았다. 권당 만원씩으로만 따져도 백만원치였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삼만원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요즘에도 이렇게 책을 읽는 이가 있구나 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 옆에 서서 삼만원을 들고 서 있던 나... 버릴 예정이었으니, 삼만원도 큰 돈이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일이 너무 많아,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술을 마실 시간도 없다. 결국 나를 위해 쓸 시간은 제로다. 그런 시간마저도 이런저런 일들이 끼어들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젊을 때 여유롭게 살아야 된다는 것일까. 그것도 최대한? 


아직 서재 정리 중이고 앰프, 스피커, 턴테이블, 시디플레이어 등 오디오기기들은 아예 연결하지도 못했다. 결국 이 덩치 큰 오디오들도 중고로 내다팔고 더 작은 것으로 바꿀 예정이다. 작은 집으로 이사왔으니, 모든 걸 작게 줄여야 한다. 하나 둘 씩 버리고 줄이고, 그 끝에 나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한 때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사랑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부, 애초부터 없었어도 무방한 것임을 나이 들수록 깨닫게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새벽까지 을지로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풍경, 살짝 이국적이었다. 이제 이런 풍경을 가진 도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에 대해 애처로워할 필요도 없다. 원래 변하는 것이다. 다만 너무 빨리 변해 나이듦이 이젠 지혜를 나누어주는 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하는 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배우고 더 부딪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그게 가능이나 할련지, 문득 술을 마시다 늙어가는 나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