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하룬 파로키 Harun Farocki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하련 2019. 1. 6. 15:53


하룬 파로키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Harun Parocki -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

6, 7 전시실 및 미디어랩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8. 10. 27 - 2019. 4. 7 



 

영화가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건 일부에 해당될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영화작품들은 현대 예술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외한) 현대 예술의 주된 특징은 관객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작품 속에서 작품 자체에 대해 묻거나, 관객의 감상이나 태도에 개입하여 스스로 반성하게 하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거나(혹은 소격효과) 도리어 그런 거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의도된 혼란을 만들어 작품의 개념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현대 영화들은 관객에게 과도한 몰입을 요구하며 관객을 지우고 작품 자체를 드러내어 마치 그것이 현실인 양 밀어붙인다. 이 점에서 장 보드리야르의 불길한 예언 - 시뮬라시옹은 현대 영화 산업에 어울린다(이천년대 초반부터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생긴 이후부터였다).


하룬 파로키의 몇몇 비디오를 본 건 우연이었다. 아예 알지도 못하는 작가였으며, 관심도 없었다. 종종 사석에서 영화가 예술로 살아남는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 아트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 점에서 화이트큐브(전시공간)은 허위에 가득찬 관객들에겐 매우 폭력적인 공간이다. 끊임없이 자기 반성을 요구하며 왜 당신은 현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냐, 받아들이지 못하냐고 되묻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하룬 파로키의 작품들은 미술관에 어울린다.  


하룬 파로키의 비디오는 메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영화나 비디오 장르(게임을 포함한)에 대한 메타의 성격을 지니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모사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메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메타(Meta)라는 접두어가 '~에 대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바, 일종의 분석이면서 반영이기도 하다. 아래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메타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남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룬 파로키  - 평행 I


4부로 구성된 <평행>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장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최근 들어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도 더 흔한 매체가 되고 있다. 영화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기계가 만들어내느 바람이 있지만 컴퓨터 이미지에는 이런 두 종류의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행I>은 컴퓨터 그래픽 양식의 역사를 연다. 1980년대 처음 나온 게임들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추상적 구성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편, 오늘날의 재현은 포토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 하룬 파로키 


하룬 파로키 - 평행 2



<평행 II>와 <평행III>은 게임 속 세상의 경계와 사물의 속성을 탐구한다. 많은 게임 속 세상들은 우주에 떠있는 디스크 형태로 나타나는데 헬레니즘 이전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게임 속 세상은 막 앞의 무대와 배경이 있는 연극무대 같다. 게임 세상에 있는 사물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 사물들의 속성들은 각각 따로따로 만들어져서 배당되어야 한다. - 하룬 파로키 



하룬 파로키 - 인터페이스 



1995년에 나는 미술 전시를 위한 작품을 제작할 것을 권유 받았는데, 이는 2채널 작품 <인터페이스>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인 듯 했다. 비디오를 편집할 때는 이미 올라와 있는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의 미리 보기, 두 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영화를 편집할 때는 한 장의 이미지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고다르가 1975년에 (주로) 두 개의 비디오 모니터를 보여주는 35mm필름, <넘버2>를 발표했을 때, 나는 이게 바로 비디오 편집의 새로운 경험, 즉 두 이미지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임을 분명히 발견한 것이다. 이 두 이미지는 무엇을 공유하는가?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가? - 하룬 파로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1944 - 2014)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방식을 통찰하고 미디어와 산업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비판하였다. 그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들의 배후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현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 편승한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영화가 반이성의 시대에 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이번 개인전은 이미지와 미디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하룬 파로키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 전시 설명 중에서 


현대는 확실히 비디오의 시대다. 이 점에서 비디오에 대한 반성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비디오에 대한 메타 비평은 '활자'로 이루어진다. 영화 비평도, 미술 비평도, 다 '글'로 씌여진다. 뭔가 이상하다. 하룬 파로키의 작품들이 가지는 주된 특징, 동시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비디오에 대한 자기 반성으로서의 비디오.


하룬 파로키. 꽤 흥미로웠다. 아래 단편영화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를 통해 하룬 파로키의 다양한 단편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간다면, 하룬 파로키의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룬 파로키 - 베스터보르크 수용소(Resp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