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하련 2022. 6. 19. 07:44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지음), 을유문화사

 

 

십수년전 나는 어느 통신기업의 사보를 만들고 있었다. 월간지라 매달 기업 경영이나 기술과 관련된 주제를 찾아 편집 방향을 정하고 관련된 전문가나 기고자들을 찾아 섭외하고 원고를 청탁하고 진행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일부는 내가 직접 쓰기도 하고 마감일에 온 원고를 다듬기도 하고 수정 요청을 하기도 했다. 수정했으나, 제대로 글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많이 뜯어고치기도 했다. 그 때 제대로 한국에 제대로 된 작가들이 많지 않음을 알았다. 특히 특정 분야에 제대로 된 통찰과 글쓰기 능력을 갖춘 이들이 없다는 것을. 당시 출판사에 근무하던 지인은 유명한 소설가들 중에도 그런 이가 있다며, 편집자들의 노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 참 많은 이들을 섭외했는데, 기억에 남는 이가 바로 구본형이었다. 국내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이루어진 대부분의 청탁 원고들은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내 손에 의해 수정되었다. 일부는 결말이 통째로 날아가기도 했다. 어떤 글은 도대체 손을 댈 수 없어 편집 디자인으로 어떻게든 커버해서 싣기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작가들이 그 유명세에 걸맞는 필력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구본형이었다. 담백하게 씌여진 에세이였으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충고로 가득차, 아마 그 때 사보에 실린 그 글을 읽은 몇 명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고 그 충고를 깊이 새겼을 것이다. 

 

어쩌면 구본형은 한국 사회에서 각 개인에게 변화 경영의 컨셉을 적용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다. 반대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기계발서'의 열풍을 열어놓은 이로 폄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폄하될 일일까. 

 

변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두려운 것일수록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변화를 이해하고 동지로 삼아라. 강력한 기술력의 충격을 두려워하지 말라. (150쪽)

 

올바른 비전은 참여를 이끌어내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올바른 비전은 직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올바른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과거를 존중한다. (210쪽) 

 

아무나 말할 수 있는 수사학이라 말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구본형은 이를 스스로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그의 글을 한갓 수사학으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오늘의 직장인들에게 '자기 스스로를 경영하라'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본격적인 책이었다. 또한 구본형 스스로도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의 저서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변화와 도전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 책을 오래 전에 구입해놓고 이제서야 다 읽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기계발서 류는 읽지 않을 뿐더러 경멸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자기계발서 쪽은 잘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명의 저자들은 존중하며 그들 스스로 실천하면서 다른 이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며 내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한다(최근에 읽은 김미경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의 열정과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고 변화는 꿈도 꾸지 않는, 책은 아예 손도 대지 않는 이들에게 자기계발서라도 읽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나도 참 많이 변했음을 깨닫는다. 아니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온 것일 테다.  

 

 

참고로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라 일부 내용은 지금과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구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