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2023년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가와 사오, <<헌치백>>

지하련 2023. 7. 25. 14:53

 

 

이치가와 사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을 읽긴 했으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도 보았으나, 일부만 기억날 뿐이다. 메이지 다음이 다이쇼 시대인데,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나쓰메 소세키라면 다이쇼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바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 그리고 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문학상이 바로 아쿠타가와 상이다. 

 

일본의 흥미로운 점은 몇 명의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은 너무나도 놀랍지만, 대중적인 저변은 몇 백년, 몇 천년 전 섬나라 그대로다. 하긴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한국은 어떻게 조선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테지만, 성리학(주자학)과 양반 계급의 그릇된 세계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르거나 애써 무시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비판적인 정치 발언을 그토록 했으나, 일본 정치나 사회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일본은 도리어 정치적으로 후퇴했다. 어쩌면 0일본 사회는 직업/집안의 경계가 너무 명확해서 정치인 집안, 식당을 하는 집안 등이 있고 각 영역들 간에 서로 주고 받는 영향이 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작가가 아무리 떠들어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소설가였으나, 그는 일본 주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한국계 소설가이면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유미리는 후쿠시마 근처로 내려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유미리는 일본의 가장 아픈 곳에 가서 아픔이란 서로 나누는 것임을 알리고 있지만, 일본 사회는 철저히 그것을 숨긴다. 

 

그런데 올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소설가는 놀랍다. 이치가와 사오(市川沙央, 43)는 척추장애인이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녀는 아이패드미니로 글을 쓴다. 아마 종이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10대부터 정치나 전쟁을 좋아해 현재 라이트노벨을 쓰고 있는 작가이다. 라이트노벨을 쓴다고 해서 나는 이미 라이트노벨로 인정을 받았나 했는데, 라이트노벨 문학상에도 번번히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는 종이책으로 나오지 않으면 작가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가 있어서, 나중에 묘비명으로 '평생 종이책이 나온 적 없는 여자'로 하려고 했다며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은 <<헌치백Hunchback>>이다. 척추가 휜 중증장애인 여성이 정상인 남자를 만나 장애인이 어떻게 소외되고 차별받는가를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의 여성으로 임신해서 낙태하고 싶다는 왜곡된 욕망으로 정상인 남자와 만나 일어나는 에피소드라고 하니... 뭐랄까, 그냥 분노에 차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조만간 번역되어 나오겠지. 

 

시마다 마사히코와 오에 겐자부로를 좋아한다는 이치가와 사오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상전이'라는 단어를 전했다. 작년엔가 읽은 <<룬샷>>은 '상전이'라는 개념으로 조직/비즈니스의 변화와 성공 전략을 이야기하였는데, 그녀는 액체 상태의 물이 얼음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상전이'를 이야기하며, 에너지를 쏟아붓다보면 언젠간 극적인 변화가 온다고.

 

이제 한국에서도 다문화 가정 출신의, 피부색이 다른 젊은 작가가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그녀가 이야기하는 차별과 연대의 서사가 기대된다. 그러면서 한국도 좀더 풍성해지겠지. 우리 모두 힘을 내기로 하자. 그리고 노력하자. 

 

<<Hunchback>>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