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초거대 위협, 누리엘 루비니

지하련 2023. 10. 2. 17:07

 

 

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Megathreats)

누리엘 루비니(지음), 박슬라(옮김), 한국경제신문

 

 

안타깝게도 다가오는 위기를 안다고 해서 한국의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도리어 절망에 휩싸일 확률이 더 높고 희망을 가질 수 조차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보자면, 투표한 사람의 절반 이상은 우리의 미래 따윈 관심 없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만 따져 물었다. 특히 노인들은 그들의 지나온 과거를 보며 투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투표해야 하지만, 그런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졌다면 아마 험난하고 굴곡 졌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런 사고를 가졌던 이들은 비명횡사를 당했거나 고문으로 불구가 되었거나 해외 이민을 떠날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던 이들은 지금 없고 그 때 침묵하고 방관했던 이들이 그 평화를 누리고 있는 현실이(이 글에서까지 홍범도 장군 이야기는 하지 말자.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고 여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누리엘 루비니도 같은 생각일까. 애초에 루비니는 비관주의자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그 비관적 전망이 현실화되니 그 누구도 루비니 교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이 책 또한 루비니 특유의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지금 이 세계에서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이 절망적인 전망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무리 정신 나간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읽는다고 하더라도, 루비니가 제시한 11가지 위협들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다소 긴 인용이지만, 루비니가 제시하는 11가지 충격을 인용한다).

 

1.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선진 시장과 신흥 시장이 모두 붕괴된다. 청년 노동자가 감소하면 고용주는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또한 현역 노동자는 저축하고 생산하는 반면 은퇴자들은 저축을 사용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따라서 인구고령화는 생산 대비 지출 비용을 왜곡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비용 상승과 성장 둔화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2.지난 수십년간 이뤄진 가난한 남반구에서 부유한 북반구로의 이주는 고용주가 임금에 대한 큰 압박을 느끼지 않고도 일자리를 채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현재의 글로벌 정치 환경에서 이주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노동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 고용주의 선택권을 박탈할 것이며 따라서 임금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것이다.

3.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내부 지향적 정책이 경제를 부양하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친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 기술, 데이터 및 투자의 세계 무역을 제한하면 수입 가격이 증가하고 생산 비용이 상승하며 성장이 저해될 것이다.

4.제조업의 자국 이전(reshoring)은 공급망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같은 저비용 신흥시장에서 우호적이지만 비용이 큰 선진시장으로 이전할 경우(이른바 ‘프렌드쇼어닝(friendshoring)’) 비용 및 가격 인상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효율적인 자본 배분보다 안전이 우선일 때 생산 비용은 상승한다. 편협한 민족주의 정치가들이 세계화를 거스르는 순간 경제는 가격 인상과 공급 병목 현상을 비롯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5.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대립이 냉전에 가까워지고 있다. 쌍방 간 무역 제한 및 관세 부과는 특히 기술과 상품 및 서비스 무역, 투자, 데이터 및 정보 분야에서 더욱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대체 이것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슨 상관일까? 가령 5G 네트워크 부문만 봐도 서구 시스템은 중국보다 50퍼센트나 더 비싸다. 우리는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중국 제품을 기피하지만 이는 분명히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결정이기도 하다. 아니면 마이크로칩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중국의 수요는 가격을 급등시켰고 칩이 필요한 자동차 공장에서는 가동 중단 사태가 빚어졌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요 마이크로칩 제조업체를 손에 넣으면 그로 인한 공급 충격은 1970년대 석유 파동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심지어 대만과 관련해 미중 간 무력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공급 충격 따위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6.중국과 실질적인 동맹국(러시아, 이란, 북한)과 서방 세계의 새로운 냉전에서 비롯된 다른 지정학적 충격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공급망과 소비 및 생산 과정의 핵심 요소인 에너지와 식량,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켰다. 만일 이란이 다시 핵을 보유하게 된다면 - 2024년 미국에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고 협상이 또다시 무산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핵을 보유한 이란을 심각한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충돌은 1970년대에 발생한 두 번의 석유파동 못지 않은 심각한 석유파동을 초래할 것이다. 항상 불안하고 제재 조치를 받는 북한은 주기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해역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만일 이 갈등이 고조된다면 - 네 개의 수정주의 세력과 서방 및 아시아 동맹국 사이의 새로운 냉전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 한국과 일본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의 산업 핵심 허브를 이용해 운용 중인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1970년대에 그렇게 어렵게 배우고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 지정학적 충격이 스태그플레이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지정학적 공황에 접어들고 있다.

7.기후 변화는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첫째 광대한 지역이 극심한 가뭄 때문에 물이 부족한 사막으로 변한다. 중동, 북아프리카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외에도 많은 지역이 이런 미래에 취약하다. 물 부족은 현재 캘리포니아와 미국 남서부, 그 외 많은 지역에서 농업 및 축산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 둘째, 탈탄소화를 향한 움직임은 청정에너지 공급이 충분히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석연료 개발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다. 이런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에너지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10년 안에 이 격차를 줄이려면 빠른 속도로 청정에너지를 추구해야 하지만 이는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셋째,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인명 피해가 필수품의 공급 및 생산을 방해할 것이다. 많은 공장이 홍수와 화재, 가뭄 같은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생산을 중단한다.

8.한층 심각하고 치명적인 팬데믹이 더 자주 발생한다. 글로벌 기후 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병원체를 옮기는 동물들과 인간이 가까이 거주하게 되고, 시베리아 툰드라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수천 년간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대기 중에 노출되면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의 공급망은 상품과 서비스의 배달에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고 이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에 의존한다. 특히 상품이 시간에 민감한 운송에 의존할 경우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제한되거나 둔화되면 생산의 모든 단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 국가는 의약품과 개인보호장비, 식량 및 농산물을 자급자족하게 되어 필수품 수출이 제한되었다.

9.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 점점 더 늘어나 친노동, 친임금, 친노조 입법 및 재정 정책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재정 부양책이 노동자와 실업자, 소외계층을 보호하는 데 집중할수록 임금 상승이 가속화되어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적 상승이라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야기될 수 있다.

10.2021년에 몇몇 송유관 회사와 육류가공 공장이 경험한 것 같은 사이버공격이 더욱 치명적이고 빈번하게 일어나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주요 기반 시설도 이런 공격에 취약하다. 특히 전력망과 금융 관련 시설들이 그렇다. 2021년 8월에는 연방기관인 NASA와 HUD(주택토시개발부)가 디지털 보안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다. 사이버 보안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수백만 고객들을 유치하고 있는 대부분 산업을 안전하게 보호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방대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및 보호하는 데 수천억 달러가 소요되어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 빈번한 사이버공격 때문에 성장이 점점 더 저해되는 것이다.

11.무역 및 금융 제재를 통한 미국 달러 -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들의 주요 통화 - 의 무기화가 준비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역할을 약화하고 가격 하락을 촉진해 인플레이션과 같은 무질서를 불러온다.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 충격은 금본위제가 종료되면서 촉발되었다. 역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주요 외환보유고를 동결시키는 것으로 시작으로 러시아에 부과한 무역 및 금융 제재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와 중국, 서구 경쟁국들이 준비통화로서 미국 달러를 버리고 회계, 지불, 자금조달, 가치 축적을 위해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대체수단을 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수세기 동안 지정학적 충격과 힘의 변화에 따른 금융 전쟁은 특정한 준비통화의 쇠락과 다른 통화의 부상을 불러왔다. 미국 달러의 추락과 그에 따른 평가절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상품 대부분이 달러로 가격이 책정되는 상황에서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그런 상품들의 달러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지정학적 사건에서 비롯된 무역 및 금융 제재는 국제 무역 및 금융 거래를 위한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국제은행간 통신 협회)를 시작으로 달러 융자 및 지불에 의존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시장의 원활한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금융 전쟁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금융 혼란 그리고 결과적으로 6장에서 논의할 궁극적인 혁신으로 이어진다. (165쪽 ~ 171쪽)

 

짧은 문장으로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11개의 충격에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각각의 사항 대부분은 그 주제에 대해서만 따로 책들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소재/주제들이다. 심지어 루비니는 이것들이 한 번에 오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그냥 상상만 해도 끔직하지 않은가. 나는 단 한 번도 이것이 한꺼번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나는 중기적으로 한 개도 아닌 자그마치 11개의 부정적 공급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모든 부정적 충격들은 잠재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잠재 경제 생산량을 감소시키며, 생산 비용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이들은 전부 잠재적인 초거대위협이다. (165쪽) 

 

전 세계적으로 위험이 높아져 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리 한국 사회가, 정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도대체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암울한 시기에, 예상보다 더 빠른 시기, 기후 위기나 전쟁 등으로 몰락할 지도 모르는 이 땅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만 두고 이야기 하자면,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인종 갈등이나 종교 갈등까지 등장했으며(종교적 갈등이 없는 보기 드문 나라였으나), 아무리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한 들 서울 시내에 아파트를 구할 없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며 선택이다. 이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원인과 배경을 가진 저출산 문제를 재정적 지원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정부의 해법은 손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유튜브 같은 곳을 보면 '국뽕'으로 가득한 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이방인, 낯선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곳이다.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면서 다양성이나 다원주의를 가기엔 최소 오십년에서 백 년 이상 더 걸릴 것같은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 일일까. 반대로 그만큼의 위상에 걸맞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싶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그런 준비가 전혀 안 된 곳이다. 나는 반공을 외치며(도대체 공산주의가 왜 아직도 이야기되는지 모르겠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왜 같이 들고 다니는지, 주한 미군 철수 반대 서명을 받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 주한 미군이 있는 이유는 한국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진 유효한) 그들의 이익 때문이고 (전시 군사 작전 통제권을 받아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한국 정부와 국방부의 편익 때문이다. 여러모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 때문이지, 일부 국민들이 철수를 반대한다고 해서 철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미국의 공화당 관계자들은 미군 철수를 정말 원하고 있다. 왜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땅에서 청춘을 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군인들은 한반도에 근무하고 싶어하는데, 휴전 중인 상태라곤 믿기지 않는, 너무나도 세계적으로 힙한 곳에서 평화롭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4월에는 데이비드 맬패스(David Malpas) 세계 은행 총재가 이렇게 경고했다. “개발도상국은 팬데믹, 인플레이션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규모 거시 경제 불균형, 에너지 및 식량 공급 부족 등 여러 겹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빈곤 감소, 교육, 보건 및 성평등에서 거대한 역행을 일으키는 중이다.” (43쪽)

 

하지만 세계는 지금 격변기다. 지정학적 위기는 심해지고(그래서 한때 제국이었던 국가들은 나름대로 지역 패권을 가지기 위해서 분투 중이다) 기후위기는 아예 예측 범위가 인류가 그동안 경험해왔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냥 몇 백 년 이내 인류를 몰락할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지경이지만, 전 세계 정치적 리더들은 여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고 생각이 있을 지언정 이것을 밀어붙일 역량이나 지도력을 갖추지 못했다(굳이 여기서 한국의 상황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거대 스태그플레이션과 부채 위기
- 눈먼 시장이 불어들인 부채위기
- 민간 및 공공부문 정책의 실패
- 인구통계학적 시한폭탄
- 저금리의 함정 그리고 호황과 불황의 주기
- 거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

2. 금융, 무역, 지정학, 첨단기술, 환경의 위기
- 통화 붕괴와 금융 불안
- 세계화의 종말
- AI와 사라진 일자리
- 지정학적 갈등과 새로운 냉전의 시작
- 거주불가능한 지구

3.   재앙을 피할 수 있을까

 

 

책 내용 대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11가지 충격에 대한 배경과 원인, 설명으로 이어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고 노트한 걸 옮기자니 너무 길어질 듯 싶다. 최근 내가 읽은 책들은 경제적 불평등(<<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 <<위대한 탈출>>, 아마티아 센의 책들 등),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책들(피터 자이한의 책들, <<이미 시작된 전쟁>> 등),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책들(<<2050 거주불능 지구>> 등)인데, 흥미롭게도 이것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읽어온 책들을 한 곳에 모은 결론처럼 읽혀서 더 절망적이었다. 한 편으로는 미국 국뽕에 가득차 있는 피터 자이한의 책들에 대해 평가절하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러기엔 부채는 너무 매혹적이다. (33쪽)

 

경제적으로 보자면, 이 모든 것은 부채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르헨티나는 1991년까지 자국 통화인 페소를 미국 달러에 고정했고, 페소화가 안정화될 것이라고 확신한 대출기관들은 걱정을 접고 다시 해외 융자 창구를 열었다. 아르헨티나는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다시 공공 부채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40쪽)

 

나는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후 벌처 투자자(vulture investor, 부실 기업이나 부실 채권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높은 차익을 올리는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고소를 방어할 수 있도록 10년 동안 국제 법정의 증언대에 섰다. 정책입안자들은 종종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자원을 동원하다가 미래의 위기가 시작될 토대를 마련하곤 한다.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꼽는데, 이는 차입자와 투자자가 더욱 과감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구제 금융의 다른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41쪽)

 

화폐의 시간가치는 기원전부터 있었던 개념이다. 부채와 이자에 대해서 너무 미워하지 말자. 금융 자본주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 되었다. 이젠 자본주의가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미국과 중국이 지정학적 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거나 두 강대국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 한 나라 경제가 특정 국가 또는 세계의 경제 흐름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가 끝내 파산하고 유로존의 붕괴가 시작될 수도 있다. 정권을 장악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국가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망쳐 지속불가능한 부채가 더 많이 축적될 수도 있다. 어쩌면 기후 변화 때문에 마침내 지구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전환점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48쪽)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한국의 진보 정당이 이야기하는 아젠다가 고작 '동성애'라니, 이런 코미디가. 그들이 선정한 주제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내세우는 많은 주제들이 90년대 식 일상 정치의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대 서사가 다시 움직이는 시기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배경을 읽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한심한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보면, 그냥 절망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부채 문제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인기 있는 해결책이 하나 있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얻는 것이다. 지금껏 100년이 넘도록 경제학자들은 긴축재정과 재정 부양책 중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45쪽)

 

낮은 금리는 경기 부양을 위한 손쉬운 해결책이다. 실은 한국 정부나 한국 은행이 독단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미국 달러와 맞추기 위해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재정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실은 달러가 기축 통화가 아니었다면 이미 몇 번이고 무너졌을 것이다)에서 금리를 올리자 한국 정부도 올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동시에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달러는 그 자체로 정치적, 경제적 무기다. 이런 점에서 환율이란 정말 흥미로운 제도다. 

 

저금리와 신용, 재정 부양책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만들어진 값싼 돈은 결국 후속 자산과 신용에 또 다른 호황과 불황 주기의 씨앗을 뿌린다. 각각의 주기를 겪을 때마다 언제나 더 많은 부채가 쌓인 채로 변곡점에 도달하게 되고,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 그나마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로만 - 깨닫게 되는 것이다. (117쪽)

 

결국 부채로 야기된 경제적 문제들은 다른 문제들 - 지정학적 위기나 기후 위기 등 - 으로 더 복잡해지고 위험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안타깝게도 한 국가가 해결할 수도 없다. 반대로 한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다른 국가도 같이 위기에 빠지게 되는 구조다. 아마 루비니도 자신이 이야기하는 비관적 위협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만들어놓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한국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이들이 인플레이션의 지속 여부를 논하는 동안 나는 이렇게 경고하고자 한다.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그리고 고용 성장을 억제하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비하라. (142쪽)

 

전 세계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위치에 올라왔지만, 한국 정부나 한국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무관심하다. 도리어 미국 트레이더조에서의 냉동 김밥 품절 사태를 보면서 국뽕에만 차있다. 어쩌다가 나라 전체가 갑자기 한심해졌을까. 아니면 원래 한심한 나라였는데,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가려졌던 것일까.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비슷하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경고했다. “술을 마실 때나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낼 때나 좋은 영향이 먼저 발생하고 나쁜 영향은 나중에 나타난다. 그래서 두 경우 모두 과용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법은 그 반대다. 술을 끊거나 화폐 발행을 중단하면 나쁜 영향이 먼저 나타나고 좋은 영향은 나중에 온다. 그래서 치료를 지속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유동성에 중독된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의 숙취로 인한 나쁜 사례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연준은 파티를 중단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파티에 술을 공급했다. (162쪽)

 

누리엘 루비니의 <<초거대 위협>>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에 대한 리뷰만으로 내용을 채워야 하는데, 다른 이야기를 너무 한 느낌이다.

 

솔직히 향후 50년 동안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들어갈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라고 이야기했듯이, 그런 세계적 격변기가 시작되었고 한국은 정말 운 좋게도 그 격변기에 주도권을 노려볼 수도 있는 위치에까지 올라왔다. 반대로 다시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의 기후 위기로 100년 정도 지나면 인류는 멸종하고 지구만 남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RE100을 모를 수도 있지만, RE100을 이야기해야할 정도로 전세계적인 위기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도 원자력 에너지를 고집하는 학자들의 이기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국 시장을 내어주고 달러를 기축 통화를 만들었다. 중국도 그럴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소비 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북한사람들이나 조선족을 포함하여) 중국 사람들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나 이란, 동남아시아나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정부는 조금더 유연한 입장을 취해야 하지만, 그런 유연성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다시 트럼프가 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정말 우스운 꼴을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한심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이 책을 강력하게 권한다. 모르고 맞는 것보다 알고 맞는 편이 낫다. 모르고 맞아 화를 내는 것보다 알고 맞은 다음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보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예전부터 한국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었다. 조선의 어리석은 양반 선비들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성리학에 대한 고집으로 인해 무너졌지만. 

 

누리엘 루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