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을 샀다. 서양란이 이쁘고 화사했다. 그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 한 번 만나고 전화 통화를 몇 번 한 것이 다였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친구 관계 이상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은 거짓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컴컴했던 방안에 있다가 결국 그 서양란은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십오년 전쯤 일이다. 그녀와는 몇 번 전화 연락을 한 것이 다였지만 보기 드문 이름이기도 해서 아직도 기억나는 이름. 한 때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여겼는데,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외로움은 별개더라. 이젠 예전만큼 술을 마시지도 못해, 최근 1달 정도 외부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즐거운 술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젠 일 이야기 아니면 아이 이야기가 대부분인 술자리만 남았다. 참 쓸쓸하구나.
그 때 그 서양란 화분이 계속 생각나는 건, 빽빽한 다세대 주택들 사이 어두운 1층 방 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식물을 제대로 키울 생각이 아니면 사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서양란이 죽고 몇 주가 지난 뒤, <서양란 키우기>라는 작은 책을 사서 읽었지만(지금 기억도 나지도 않지만), 그 이후로 구입한 화분은 10개 채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식물 키우기가 어렵다고 여기지만, 내가 키우는 원리는 간단하다. 적당량의 수분을 보충할 것(식물마다 다르다. 그러니 매일매일 상태를 지켜보며 어느 정도 물을 줘야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햇빛과 바람을 쐴 것, 햇빛을 싫어하는 식물일 경우라도 조용한 바람은 쐴 것, 너무 추운 곳에 두지 말 것(여름과 겨울에 조심할 것), 그리고 자주 좋은 말과 음악을 들려줄 것. 아들이 지금 있는 식물 화분을 보곤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네요'라고 말한다. 하긴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간 것이 몇 번이나 되니까. 우리의 작은 관심과 사랑만으로도 식물은 의외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니까.
출근 전에 어두운 서재 책상에 있던 녀석을 거실 창가 쪽에 가져다 놓았다. 아래는 오래된 <<야간순찰>> 해설서다. 뭐랄까. 야간순찰을 끝내는 그녀가 거실에 나와 광합성을 준비하는 모습이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야간순찰>은 렘브란트의 대표작으로 아직도 연구되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원에 가 공부를 했다면, 렘브란트로 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들어가기 전부터 석사 논문 주제까지 생각했는데, 인터뷰로만 하던 면접에서 떨어졌다. 아마도 <바로크적 자의식과 근대 - 렘브란트 자화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 하나가 나왔을 텐데, 아쉬운 일이지.
꽃 화분도 하나 사야겠다. 아니면 작은 난 화분을 사서 꽃을 틔울까. 이젠 가능할 것같은데...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화분을 전해주지 못한 그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