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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의 귀환 - 현대 물리학과 파르메니데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내 궁금증은 너무 추상적이고 전문적이라, 늘 그냥 묻어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AI가 등장하고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하곤 한다. 최근 이론물리학의 발전은 다시 고대 철학을 불러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페이스북을 보다가 미국의 어느 기업이 원주율을 105조 자리까지 해독했다고 하는 글을 읽었다. 결국 105조 자리까지 해독했지만, 반복은 없는 무한소수인 셈이다. ‘무한소수’에 꽂혀 유리수들 사이의 무리수가 일종의 빈틈(구멍)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AI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도리어 유리수들 사이의 빈틈을 메워, 꽉찬 세계를 만드는 수라고. 그래서 미적분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결.. 2025. 11. 11.
어느 밤의 네모난 Angie 네모난 침대에 누워 네모난 창 밖을 보고 싶은데, 내 둥글궁글한 몸 사정 상 쉽지 않았다. 나빠진 눈 탓이다. 안경이 귀하던 시절, 반에서 제일 이쁜 여자아이가 끼고 왔던 금테 안경이 신기하던 시절. 일부 아이들 사이에서 번진, 동그란 눈 나쁘게 만들기.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그로부터 수십년 지난 후, 그 아이는 뭘 할까. 모 여대 피아노학과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이 작은 반도의 수도에서, 우주의 창백한 한 점 지구에서, 끝없는 우주의 은하들 중 어느 구석 은하 속에서, 네모난 창 밖으로 불 켜진 환한 도시의 일부가 보이고 들리고 움직이는데, 점점 동글동글 통나무처럼 변해가는 나는 네모난 침대에 누워, 스스로의 마음을 닫아 둔 채, 사각의 방 안에 갇혀.. 2025. 11. 6.
꽃의 파리행, 나혜석 꽃의 파리행 나혜석(지음), 구선아(엮음), 알비, 2019 나혜석의 산문집이다. 남편 김우영을 따라 간 유럽 미국 기행문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다소 새삼스러운 책이다. 다 아는 내용들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문학성이 뛰어나다거나 어떤 통찰이 보인다 하기 어렵다. 시기적인 측면을 고려하자면, 높이 평가할 요소가 없다 할 순 없지만. 이런 점을 제외하고 있는다면,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부부가 1년 8개월간 유럽과 미국을 다닐 수 있었다니, … 심지어 “콜럼비아 대학에는 조선인 유학생이 많”(178쪽)았다는 언급에서, 우리는 이 당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왜 우리는 19세기 초반(*)의 역사만큼이나 20세기 초반의 자세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나에겐 일제 식민지 치하는 마치 문화의 암.. 2025. 11. 1.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 2023년 제작, 일본 ‘완벽한 나날들Perfect Days’은 없다. 평범한 날들이 실제로는 완벽에 가까운 날이라는, 사람들의 판에 박힌 해석을 보곤 씁쓸하게 웃었다. 역사는, 시간은 언제나 승리한 권력자나 자본가의 편이고, 문학(혹은 이야기)이나 예술은 쓸쓸하게 죽어간 실패자, 혹은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의 편이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이야기로 넘쳐난다. 해피엔딩은 작위적이고, 작품성 가득한 작품들이 가진 열린 결말이나 고전 작품들의 비극적 결말은 그냥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세상이 그런 곳이기에, 그런 거다. 대체로 우리 인생은 우울하고, 조용히 슬프며, 딱 견딜만큼만 안타깝고 아프다. ‘히라야마’는 거의 말을 하지 않.. 2025. 10. 27.
유럽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 투쟁의 역사, - 1 유럽 Europe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1권 The Struggle for Supremacy 1453 to the Present 브랜든 심스 Brendan Simms (지음), 곽영완(옮김), 애플미디어 2권으로 나누어 번역된, 브랜드 심스의 > 1권을 읽었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1453년부터 1866년까지다. 읽는 내내 유럽인도 아닌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 거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 이름은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가, 그리고 이 지명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 점에서 역자를 추켜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다소 번역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해야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전쟁(투쟁)사다. 그것도 중부 유럽 - 프로.. 2025. 10. 26.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 말콤 글래드웰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 Revenge of the tipping point말콤 글래드웰(지음), 김태훈(옮김), 비즈니스북스 말콤 글래드웰의 책들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기억력이 형편없어서야... 그런데, 이 책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역시 세계적인 작가다. 하지만 이런 책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미국은 왜 저 모양일까. 출근길 버스에서 가끔 '***마취통증의학병원'이라는 광고 방송을 듣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책을 떠올렸다. 과연 통증은 병인가? 아니면 어떤 질환(병)으로 생기는 현상이므로, 병이 아닌가? 원인이 되는 병을 치료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가? 그런데 미국의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이 이 사소한 인식 차이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기억을 더듬어보.. 2025.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