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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 여인, 프랑스와 모리악

프랑스와 모리악, 『바리사이 여인』, 안응렬 옮김, 삼성출판사, 1988. 우리는 우리의 불같은 정념이 우리의 삶에 어떤 고통을 안길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얼음 같은 이성도 우리의 삶에 그러할 것임을 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전체는 어떤 고통의 그림자로 덮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깨닫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의 믿음이 유한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초하고 있고 우리의 사랑이 자신의 씨를 퍼뜨리기 위한 본능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 불행인가. 타인을 알기 힘든 만큼, 아니 그것보다 자신을 알기란 더 힘든 것이다. 자신의 믿음은 더욱더. 인생의 황혼이 어떤 고독과 고요함 속에 묻히는 이유는 자신의 거짓을 하나하나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리지뜨의 강철같은 믿음은 얼마..

카프카의 아포리즘

『카프카의 아포리즘』, 이윤택 엮음, 청하, 1989. 아포리즘을 가지고 뭔가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왜냐면 아포리즘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논할 수 없으며 단지 작가의 세계에 대한 짤막한 평만을 할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다른 작품들을 거론함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작품이 주가 되고 이 아포리즘은 참조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고작 책에 대한 값어치 없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때때로 길을 가다 자신과 똑같은 버릇이나 습관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의 공통적인 버릇이나 습관을 발견하는 순간 어리석은 그물로 그들의 영혼을 둘둘 만다.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말해주며 이 ..

불안의 개념, 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 쇠렌 키에르케고르 지음/한길사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 임규정 옮김, 한길사, 1999.비트겐슈타인이 키에르케고르를 두고 ‘진실로 종교적’이며, 자기에겐 ‘너무 심오하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세계의 한 단면을 알아차릴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언제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자신이 구원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 그가 ‘확신과 내면성은 사실상 주체성이다’(p. 365)라고 말했을 때 난 이미 확신과 내면성을 내 속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가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p. 397)라고 말했을 때 난 불안을 앞에 두고 ‘고개 돌리기’와 ‘눈감기’를 ..

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 문화일보 2000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읽고 난 다음 커피를 끓이고 있는 동안, 그 짧은 동안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달라졌다. 아니 그것보다는 막상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나마 짧게 기록해두기 위해 자리에 앉는 순간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읽고 난 다음에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생각했으나 지금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대중소설들의 '표피적 재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표피적 재미로 따지자면 엄청난 자본력으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며 매일 저녁마다 집집의 티브이 브라운관을 채우는 오락 프로그램들도 표피적 재미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 뉴의 문화들과 ..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1. 모든 것들이 '희극'으로 결론 나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존재하지 않는 자'에 의해 존재하는 자들(우리들)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자로 인해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 의미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기만'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현대란 보이는 세계의 화려함과 편리함, 또는 현란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에 의해서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지탱이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을 알..

바람 속의 네 사람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 가슴에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 손가락 하나 사랑하는 이 가슴에다 심어주고 온 사람, 그렇게 세 명이서 만났다. 원래 네 명이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한 명은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고개'에게 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는 웃기 시작했고, '가슴 구멍'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웃었다. 웃으면서 '고개'는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고 '가슴 구멍'은 등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에 나 있는 구멍들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손을 앞가슴 쪽에다 갖다대었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고 '가슴구멍'의 몸에서 바람소리가 멜로디를 만들었다. '고개'는 너무 고개를 많이 돌려 목에서 이상한 소리..

음모이론 넘어서기

음모이론 넘어서기 - 서사구조와 그 한계 1. 몇 년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말로 듣는 사람을 갑자기 소름 돋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다. 승강기 안에서 들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로 변신한 귀신의 아찔한 대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저 그런 공포담으로 받아넘기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마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 우리들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대신 귀신을 등장시키는 이 공포이야기는 '가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믿음이나 가치가 상실되었고, '부모들'에 대한 아이들의 숨겨진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안쓰러운 이야기 속에서 요즘의 우리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

바로크와 로코코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집착, 장식, 그리고 내 안의 우주

1. 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 결별을 선언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령 그 사랑이 자신에게 있어 어떤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을 때, 그래서 그 사랑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육체에, 자신의 영혼에 어떤 상처를 입는다고 했을 때, 그런 경우에 그 사랑이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만 할까? 아마 많은 청춘남녀들이 떠나가는 사랑을 향해 돌아오라고 안쓰러운 손짓을 하고 절규하고 몸부림칠 것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위와 같은 경우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녀, 혹은 그가 귀가하는 무렵 길모퉁이에 기대고 사랑하는 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 계속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때, 떠나간 이가 우리에게 하는 말. "넌 ..

육체의 악마, 레이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 - 레이몽 라디게 지음, 김예령 옮김/문학과지성사 육체의 악마, 레이몽 라디게(지음), 문학과 지성사 1. Passion 불같이 활활 타오르던 사랑이 식지 못한 채 여러 차례의 깊은 계곡을 통과한 다음, 끔찍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의 정념이 사악하기 때문일까? 혹은 불륜을 지속시키기 위해, 부도덕을 도덕으로 위장하기 위해, 그 순수한 사랑은 그 사랑을 타인들에게 숨겼다는,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사랑이 허약하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상처 입은 것일까? 2. 불륜 나에게, 혹은 이 소설을 읽고 잔인한 쾌감,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자신만만하게 '카타르시스'라고 말했을 그런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 도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