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 마이클 우드(지음)

지하련 2025. 5. 4. 09:56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

마이클 우드(지음), 남경태(옮김), 중앙M&B 

 

 

'동서양의 역사를 바꾼 대원정과 쓸쓸한 귀환'이라는 부제가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다.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으로, 이 분야에 있어 마이클 우드(Michael David Wood)는 압도적이다. BBC에서 진행한 많은 역사 다큐멘터리를 주도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책들을 집필하였고,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클 우드가 쓴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권 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한국이 글로벌 사회의 주요 일원된 지금, 예전만큼 세계사에 관심을 덜 가지는 듯하다. 그 나라의 역사를 알고 지금 현재를 보면 더 흥미진진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가령 제국의 후예들 - 터키, 이란, 인도 등 - 이 왜 큰 소리를 치는지를, 그리고 고구려, 발해를 제외하고 제국이었던 적이 없었던 한국은 세계 열강들 틈에서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같은 거 말이다. 

 

Alexander the Great at the Battle of Issus (2nd c BC). Detail of a mosaic from the House of the Faun in Pompeii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을 따라 각 지역들의 현재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겹쳐 서술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이기도 하면서 원정기이며, 또한 그것의 의미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실제 BBC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지는데, 아래 링크를 달아두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56년에 태어났는데, 생일은 아마도 12궁도 가운데 게자리에 해당하는 7월 20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는 절망적인 상태의 부족들과 공국들을 통합해서 혼자 힘으로 마케도니아 왕국을 세웠다. (29쪽)

 

알렉산드로스는 비록 그리스 문화로 포장되기는 했으나 독한 술과 거친 삶, 사나운 귀족들로 대표되는 반(半)야만적인 세계에서 자랐다. (30쪽)

 

기원전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서의 삶을 떠올려보기 쉽지 않겠지만, 현대인에게 살라고 하면 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물 살에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지역을 평정한 후 페르시아를 향한다. 하지만 이 동방 원정이 세상 끝을 향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결국 그리스 반도로 돌아오지 못한 채 죽을 것이라고. 

 

 

서양과 동양이 처음으로 만난 것이 세계사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에 속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용감하면서도 잔인하고 , 너그러우면서도 난폭하며, 기사도와 탐욕이 병존했던 10년 간의 원정은 거의 지구 한 바퀴 거리인 3만 5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원정이 지나쳐간 곳에는 마치 썰물이 드러난 해초처럼 낯선 빛을 내는 잔해들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도시, 푸른 눈의 인도인, 이국적인 보물, 고대의 문헌, 놀라운 이야기와 노래, 시, 신화, 전설의 보따리였다. (8쪽 ~ 9쪽)

 

그리스 고전주의가 끝나고 헬레니즘이라는 기묘한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원정으로 세계는 좁아졌고 교류가 늘어났으며 낯선 사람들과 지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사라졌다. 가끔 '세계 시민'이라고 말할 때, 그 시작은 바로 헬레니즘 시기였다. 코스모폴리탄의 시작은 알렉산드로스로부터 기인하였으며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시와 노래는 중세 유럽에만도 200가지가 넘으며, 말 그대로 수천 가지의 문헌으로 전해진다. 그 가운데는 러시아어, 폴란드어, 프랑스 고어, 체코어, 세르비아어 문헌들도 포함되어 있다. 유대의 전통에서도 알렉산드로스는 명실상부한 민중의 영웅이다. 중세 독일의 서사시가 있는가 하면, 아이슬란드나 에티오피아의 무용담에도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것이 있다. 14세기 말 그의 이야기는 몽골에까지 전해져서 거기서 알렉산드로스는 칭기즈 칸의 초자연적 조상으로 섬겨진다. 나아가 알렉산드로스는 프랑스의 카드놀이에 나오는 네 왕 중 한 사람이며, 그리스에서는 학생용 지도 만이 아니라 선술집 벽에까지도 그의 세운 제국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시칠리아의 사육제용 마차, 에티오피아의 신부 의상, 비잔티움 교회의 벽화, 인도 무굴 제국의 회화에도 등장한다. (9쪽)

 

알렉산드리아의 창건은 이집트의 지적, 경제적 생활의 중심 이동을 빚었다. 이후 이슬람의 시대가 올 때까지 1천년 동안, 이집트는 지중해와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런 점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정식 명칭은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도시는 이집트의 부가 드나드는 화물 집산 항구로 창건되었으나 2세기 뒤에는 '전세계의 교차로', 헬레니즘 시대의 엘도라도가 된다. 심지어 이런 말이 나돌 정도였다. "얘야, 인생에서 출세하려면 구두끈을 졸라매고 이집트로 가려무나." 오늘날에는 그 멋진 시대의 단편들만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의 고분과 극장, 모자이크, 또 그 도시에 살았던 그리스 출신 철학자, 예술가, 지리학자들의 저작, 그리고 후대에 알렉산드리아를 촉매로 하여 여러 문화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탄생한 화려한 공예품들, 멀리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에서도 발견되는 수많은 보물들이 그것이다. 기원후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상인들은 계절풍을 타고 남인도까지 항해해서 갠지스, 베트남, 중국과의 무역로를 열었으며,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시작된 사상과 문화의 교류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의 전통적인 생활은 '문명 세계의 최대 도시'에 의해 탈바꿈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기원전 331년 초였다. (106 쪽 - 107쪽)

 

그의 유산은 근처에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2천년 동안 페르시아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들의 위대한 고대 문명은 본질적으로 고대 페르시아와 조로아스터교의 유산, 아랍 이슬람, 헬레니즘이라는 세 가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리스의 유산, 아랍 이슬람, 헬레니즘이라는 세 가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리스의 유산을 지나칠 정로도 철저하게 추구한 시대는 중세였다. 지금도 전통적인 시아파 대학교 같은 곳에 가보면, 학자들이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받은 길다란 검은 옷을 즐겨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란의 정신 - 이란 이슬람교를 포함한다 - 을 고취하기 위한 작금의 싸움에서도 헬레니즘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2쪽) 

 

The Battle of Alexander and Darius. Painting by Francesco Solimena (1735,Palace of La Granja, Madrid)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알렉산드로스의 리더십이었다. 수천 수만명의 군인들을 거느리고 끝도 없는 행군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행군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 명씩 죽어나갈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군인들은 동용할 것이고, 누군가는 탈영을 하고 누군가들은 반역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 때는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마 그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 익숙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번 원정은 무척 어려웠다. 행군 대열의 머리에서 꼬리까지 카와크 고개를 지나는 데만도 16일이나 걸렸다. 게다가 1월이라서 밤에는 매우 추웠다. 식량 보급을 위해 군대는 이 지역 일대의 겨울 식량을 약탈했지만 전 군이 2주일 동안 먹으려면 식량이 수 천 톤이나 필요했다. 따라서 식량을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오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아리아노스의 기록을 보니 사실상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스측 기록에 따르면 그들 역시 지세가 험해지면서 행군이 한층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즈음 그들은 병참에 큰 애로를 겪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얼추 계산을 해보았다. 전 군대가 하나의 지점을 통과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그리스군은 행군 길이가 25킬로미터 이상이나 뻗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와크 강을 다 건너려면 2주일이나 필요하다. 그렇다면 보급대는 판자시르 계곡에서 이 고개까지 늘어선 길다란 행군 대열에 지속적인 식량 공급을 할 수 없다. 군대는 식량이 떨어졌을 것이다. 보급장교들은 짐을 운반하는 짐승이라도 잡을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일대는 나무가 없는 바위투성이 민둥산이므로 불을 피워 조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고기를 그대로 먹어야 했다. (188쪽) 

 

이 무렵 원정군은 크게 증강되어 8만 명의 병력에다 중군자만 해도 3만 명에 이르는 규모였고, 그 밖에 짐을 운반하는 가축, 공성 기계, 코끼리에다 과학자, 식물학자, 박물학자, 그리고 마케도니아에서 세상의 끝까지 모든 걸음을 측정하는 측량관 등이 일행에 포함되어 있었다. (242쪽)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로 군대를 통솔했는지, 그리고 그리스 마케도니아로부터 함께 출발했던 장군들 중 얼마나 살아남아 인도까지 갔는지 이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그것도 이십대 대부분을 수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지역을 점령해 나가면서 말이다. 

 

A map showing the route that  Alexander the Great  took to  conquer   Egypt ,  Mesopotamia ,  Persia , and  Bactria .

 

아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BBC 다큐멘터리다. 10부작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다큐멘터리 내용을 바탕으로 씌여진 것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Youtube에서 10부작 모두 확인할 수 있으나, 화질이 좋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4RRf9fGfHJE&list=PL73jMsaqbDD5Kgj7_Z8YAPcZnsWFJkn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