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284

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유혹에 대하여 De la se'duction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1. 철 지난 책을 읽었다. 작년에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읽다보면 반-페미니즘처럼 읽히기도 하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찝찝하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공격할 만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보드리야르는 여성의 유혹, 쾌락 등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유혹'의 관점에서 유혹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상징적 차원, 이론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그래서 일종의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말장난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를 분석하는 챕터에선 절정에 이른다고 할까. 보드리야르는 서문에..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촘스키는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마 그의 언어학 이론은 영문학과나 언어학과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나 다루어질 것이니, 일반 독자가 노엄 촘스키의 학문 세계를 알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정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외부의 계기가 있었으나, 나 또한 노엄 촘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이들이 대단한 언어학자라고 추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도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왜 추켜세우는 것인가!..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지음), 이상희(옮김), 추수밭 기대했던 것만큼 깊은 통찰력을 주진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널리스트가 썼다는 걸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즉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인용들을 재미있게 엮은 책에 가깝다. 그래서 책은 쉽게 읽히고 무척 재미있다. 나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너무 쉽게 읽혔다고 할까. 가볍기도 했고. 하지만 일반 독자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추수밭(청림출판)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몽테뉴,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장 볼락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Paul Celan / unter judaisierten Deutschen 장 볼락Jean Bollack(지음), 윤정민(옮김), 에디투스, 2017 로 잘 알려진 파울 첼란의 연구서가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마흔아홉의 나이에 파리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시인.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고 그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가 그 말을 번복하게 만든 작가. 하지만 시집을 읽지 않는 시대, 한국 시인도 잘 알지 못하는 요즘, 파울 첼란의 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이 때, 이 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파울 첼란의 시는 쉽지 않다. 하지만 ..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서양철학사 History of Philosophy윌리엄 사하키안William Sahakian(지음), 권순홍(옮김), 문예출판사 1. 서로 얽혀있는 것이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찾고 이를 지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의 분투가 필사적으로 이어졌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있는 이 세계가 불완전하고 저기 완전한 세계가 존재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것의 역사를. 철학의 입장이 아닌 예술사의 입장에서 이 곳과 저 곳의 대비는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인식의 시작이며, 어떤 절망이, 보이지 않는 슬픔이 이 세계 전반에 물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톤적 신비주의가 밀려들 것임을 예감케 한다.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는 중세의 신으로 변화하고 칸..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La Pesanteur et La Grace 시몬 베유 Simone Weil(지음), 윤진(옮김), 이제이북스 신은 오직 부재不在의 형태로 천지만물 속에 존재한다. - 183쪽 나이에 따라 읽는 책, 읽히는 책은 달라진다. 새삼스럽게 지루하던 고전이 재미있어질 수 있고 웃고 열광하던 대중 소설이 식상해질 수도 있다. 이건 책의 탓이 아니다. 나이듦의 신비일 뿐이다. 성당을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미사에 쓰이는 모든 기도를 외우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시몬느 베유(1909-1943)의 마음을 알 것같기도 하다. 이 책은 세계2차대전, 그야말로 전쟁통에 쓰여진 짧은 아포리즘 모음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는 ‘중력’ 앞에서 신을 향해 상승하려는 ..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돈으로 뛰어들어라고 주장한다. 이를 찬양하며 '창조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부수고 깨뜨리며 그냥 저지르라고 말한다.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법칙에 의문을 제기하며 ADHD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엘 고어의 사무실 풍경 이 책을 읽은 후, 우리는 비로소 엘 고어의 지저분한, 혹은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책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도 일종의 정리방식이라는 걸. 그냥 쌓아두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서류들은 위로 올..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신뢰할 만하며 단테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어떻게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예증한다. 단테 문학의 변화와 성장은 이 책의 중심 테마이며, 을 향해간다. 인간에 대한 단테의 미메시스는 고전 고대의 미메시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이전의 중세 시대에는 전혀 없었던 미메시스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단테는 고전 고대처럼 인간을 아득히 떨어져 있는 신화적 영웅으로 보지도 않았고, 중세 시대처럼 인간의 윤리적 타입을 추상적으로 혹은 일화적으로 재현하지도 않았다. 단테는 살아있는 역사적 리얼리티 속의 인간, 단..

셰익스피어의 시대, 프랭크 커모드

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 프랭크 커모드(지음), 한은경(옮김),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1 책은 얇지만, 의외로 단단하고 치밀하다. 셰익스피어(1564 ~ 1616)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 전후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연극 제작, 그리고 개별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언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쉬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독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 번역서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그러나 미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는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 1919~2010) 교수 생전에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