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286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이정옥(편)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고통스럽지만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 결과, 하나를 말하면 하나 밖에 모르는, 창조성을 기르지 못한 인간은 결코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라는 이 책 머리말의 한 문장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로 하여금 경멸감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우습게도 이 책은 이 책이 만들어진 방향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책이다. 가령 예를 들어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형편없었지만, 문제는 이 책에 제시되어있는 답안이 모범적인 것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에 실린 문제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또한 각각의 문제들은 한결같이 까다롭고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지나간 미래,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나간 미래 -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음, 한철 옮김/문학동네 지나간 미래 Vergangene Zukunft 라인하르트 코젤렉 Reinhart Koselleck 지음, 한철 옮김, 문학동네 겨우 이 책을 다 읽었다. 대중 교양서라고 하기엔 너무 전문적이고 그렇다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이라는 방대한 사전의 편집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그리 유명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달 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는데, 읽고 난 다음 느낀 바를 크게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역사 서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실제 경험한 사실, 목격자의 증언, 또는 사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서술은 ‘서사’와 ‘..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글렌 예페스(편)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Taking The Red Pill 글렌 예페스 엮음, 이수영/민병직 옮김, 굿모닝미디어 이 책은 영화 에 대한 여러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1 편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므로 2편이나 최근 개봉한 3편에 대한 분석은 나와있지 않다는 점이 미흡한 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최근 서점가에는 영화 에 대한,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넘어서 여러 전문 분야에 있는 이들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소재나 스토리는 흥미로운 것이며 이 책에 담긴 몇몇 편의 글 또한 흥미롭기도 하다. 그러나 에 대해, 2편까지 밖에 보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이렇게 책까지 낼 정도인가에 대해선 회의적..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 뤼디거 자프란스키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 (삶과 사유에 대한 철학과 예술) Wieviel Wahrheit braucht der Mensch? 뤼디거 자프란스키 Rudiger Safranski 지음, 오석균 옮김, 출판사 지호 “분명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삶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거짓, 맹목성, 열광, 낙천주의, 확신, 염세주의 또는 그 밖의 무언가로 도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전한 피난처로 도피한 적이 없습니다. 그 어떤 피난처로도요. … 그 사람은 마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서만 발가벗고 있는 사람 같아요.” 카프카의 연인이었던 밀레나 예젠스카 Milena Jesenska는 카프카의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 Max Brod에게 카프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이성의 한가운데에서 - 이성과 신앙, 알랭 퀴노

이성의 한가운데에서 - 이성과 신앙 au coeur de la raison - raison et foi 알랭 퀴노 Alain Cugno 최은영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47 편하게 읽을 만한 내용을 담은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역이 좋은 편도 아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은 이성과 신앙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되고 그러한 고민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랭 퀴노는 철학을 전공한 이로서 다양한 철학 서적을 펴낸 학자이다. 그리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철학(이성)과 신앙이라는 이 불편한 관계를 서로 연결시키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성을 ‘밝고 명료한 이성’, 신앙을 ‘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신..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이덕일 지음, 웅진닷컴 잊혀져버린 이들, 한국의 아나키스트. 이런 감상적인 문장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이들이 우리에겐 낯설며, 그 이유가 그들이 아나키스트라는 데에 있다. 오직 단재 신채호만이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 그도 그럴 것이 아나키스트들은 좌우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제목*을 가진 이 책을 무슨 이유로 구입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전에 읽기 시작하며 단숨에 다 읽어버렸으니, 책 읽는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명문가 출신의 이회영과 그들 가족이, 그를 둘러싼 여러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푸른숲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푸른숲 600페이지를 다 읽기 위해 독자가 부담해야할 몫은 적다. 그저 로자가 걸어갔던 길을 뒤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길이라 낯설지만, 진실 되고 신념에 가득찬 길이라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 옆에서 막스 갈로는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세상은 변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인데. 그러나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진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대중들에게 도착하게 되고(때때로 영원히 도착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그건 마치 진실을 적은 편지 한 통을 집어넣고 밀봉한 병을 대양의 한 가운데에 던져 누군가에게 발견되기 기다리는 것과 유사하게..

오스카 와일드,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페터 풍케 지음, 한미희 옮김, 한길사 도덕적인 책이라든가 부도덕한 책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 잘 썼거나 잘못 쓴 책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삶은 예술의 가장 뛰어난 제자인 동시에 유일한 제자이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자연이 그토록 불완전한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술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나는 나의 천재를 인생에 사용했으며, 작품에는 재능만을 사용했답니다. ***** 오스카 와일드가 여기저기 남긴 몇 마디의 문장은 심미주의(유미주의)의 분명한 정의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은 로코코의..

현대 프랑스 지성사, H.S.휴즈

현대 프랑스 지성사 (부제 : 차단된 통로 : 절마의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사상) H.S.휴즈 지음, 김병익 옮김 문학과 지성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는 알아도, 이 영화의 원작자인 조르주 베르나노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실은 브레송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한 소설가에 대해선. 이런 편식은 비단 문학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1960년대 구조주의의 열풍, 또는 그 이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 이 구조주의 학자들이 젊은 시절에 누구를 만났는가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못해 무식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학자들에게 사르트르가, 말로가, 생 떽쥐베리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프랑소와 모리악과 더불어 양차 대전 중간기에 가장 영향력 큰 두 카톨릭 ..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조르주 뒤비

, 조르주 뒤비(지음), 양영란(옮김), 동문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계도 확실히 존재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동등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던 사회의 맥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현대와 중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대인들 중 일부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중세적 믿음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중세인들과 비슷한 연유에서 기인한다. 즉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언제나 곡식은 부족하고 전염병이 돌고 생활 환경이 극히 나쁠 때, 혹은 어떤 정신적인 이유로 인해 세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뒤덮여 있을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고수한다. 조르주 뒤비의 이 책은 간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