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897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이 생각을 해봐. 나도 이번 한 번만 말하겠어. 있지. 우리는 같이 잘 살 수도 있었어, 진짜 좆나게 잘. 에니스, 네가 안 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 산 뿐이야. 거기 몽땅 다 있어. 우리가 가진 건 그것 뿐이야. 씹할 그것 뿐이라고.(...)" - 345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은 앞서 읽었던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군상들과 겹쳐져, 위 문장 쯤에선 눈물이 나올 정도다.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라니! 아마 한국에서 특정 지역을 소재로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책이 되어버린 남자 Das Buch알폰스 슈바이거르트(지음), 남문희(옮김), 비채, 2001 원제는 '그 책'이고 내용은 번역본 제목 그대로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 씨에 대한 것이다. 정말로 책이 된다. 책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히기도 하며 읽히기도 하고 땅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나 독서에 대한 깊은 사색이 묻어나오지 않으며 그저 책이 된 채 떠도는 이야기이다. 독특하기는 하나 깊이는 없다. 책은 짧고 금방 읽힌다. 그리고 왜 읽었을까 하고 반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 앞에 인용된 독일 저널들의 찬사는 어색하고 난감하다. 왜냐면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내 감식안이 형편없는 건 아닌가 하고. 제목은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시간 내어 이 책을 읽진 말자. (그래서 독일 아..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지음), 이정환(옮김), 민음사 처음 읽을 땐 꽤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읽을 때 금방 읽었다. 그러나 처음이나 두번째나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도리어 늘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듣고 읽지만, 정작 실무에선 그걸 잊어버린다는 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다. 고객 가치를 우선하라. 세계 최초를 추구하는 일의 공허함 (12쪽) 우리는 고객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떠들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며 오랜 기간의 관찰과 설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정작 놓치는 것이 고객 가치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실현하기 어려운 게 고객 가치다. 어쩌면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기업들은 고객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소설 쓰는 게 영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인 듯 싶다. 실은 소설 쓰는 법 따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소설가가 되는 경우보다, 그냥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연히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후, 몇몇 작가들은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작법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다. 결국 내가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소설 쓰기와는 무관하게, 소설 쓰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할 정도로 수준 있는 소설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내 동경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젊은 하루..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 나 -을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그 시절 이후 헤밍웨이를 읽지 않았고, 이 사실마저도 이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말년에 행한 인터뷰들을 소개한다. 뭔가 깊이있는 이야기가 나오기 보다는, '아, 헤밍웨이구나'정도랄까. 그래, '헤밍웨이'.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끝냈을 때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괜찮아..

은유가 된 독자,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알베르토 망구엘(지음), 양병찬(옮김), 행성비, 2017년 독자란 무엇이고 독서란 무엇일까. 책과 독서에 대해서라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제 책 읽기와 여행, 은둔과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독서란 '텍스트를 독파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탐구된 영역은 기억의 영역에 저장되고, 그 과정에서 미지의 영역은 점차 익숙한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흐릿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계속된다. " 전체에 적용되는 원리는 각 문단과 구절에도 적용된다. 뿐만 아니다. 그 원리는 인간의 삶 전체에 적용되며, 인생의 각 부분에도 그러하다. 인류의 역사 전체에 그러하며, 개인의 인생사에도 또한 그러하다." '독서의 경험'과 '삶의 여정에서 겪는 경험'은 거울처럼 서로 ..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롱기누스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롱기누스(지음), 김명복(옮김),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년 수사학 책이다. '숭고sublime'에 현혹된 셈이다. 역자인 김명복 교수에 의하면, 숭고의 개념은 수사학에서 시작되어 문화와 예술 전반에, 그리고 자연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숭고'(예술과 미학에서의)와 롱기누스가 이야기하는 바 '숭고'(수사학에서의)는 다른 것이다. 이 책은 웅변술, 저술에서의 표현과 수사법에서의 숭고에 대해서 논의한다.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올려져, 우리가 의기 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가 들었던 것들을 마치 우리 자신이 그들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 29쪽 그래서..

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유혹에 대하여 De la se'duction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1. 철 지난 책을 읽었다. 작년에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읽다보면 반-페미니즘처럼 읽히기도 하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찝찝하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공격할 만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보드리야르는 여성의 유혹, 쾌락 등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유혹'의 관점에서 유혹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상징적 차원, 이론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그래서 일종의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말장난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를 분석하는 챕터에선 절정에 이른다고 할까. 보드리야르는 서문에..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있다, 론 애드너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있다 론 애드너Ron Adner(지음), 김태훈(옮김), 생각연구소, 2012년 이 책의 원제는 'The Wide Rens'다. 혁신에 성공하려면 넓은 범위를 조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그간 읽었던 대부분의 전략 서적들이 혁신 실행을 내부의 관점이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을 둘러싼 혁신 리더십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에선 '니 혼자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다. 먼저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유형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혁신의 성공적인 상업화가 다른 혁신의 성공에 의존하는 정도와 결부된 '공동혁신위험Co-innovation Risk'이다. 다른 하나는 최종 소비자가 완전히 가치 제안을 평가하기 전에 파트너들이 혁신을 수용하는 정도와 결부된 '수용 사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