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16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지음, 김충식 옮김, 예지각, 1989년 초판.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만 유독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져갈 때,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져갈 때, 그것을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가. 이제 ‘운명’대로, ‘팔자’대로 살면 그 뿐이다. 헛된 희망을 꾸지 말고 그저 원래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으며 되는 일이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운명’와 ‘팔자’를 다스리고 있다는 초월적 실체에 대한 경배를 시작하면 된다. 점쟁이 집에 자주 가고 부적 붙이고 굿도 하고 안..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지음), 정영목(지음), 해냄 소설을 읽다 끔찍한 기분이 들어, 읽기를 멈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끔찍한 기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 놀라운 소설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위대한 서사가 어떻게 우리 인간의 삶과 영혼, 그 밑바닥에 숨겨진 고통스러운 존엄성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내가 그 동안 읽었던 그 어느 소설보다 위대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인간이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이 소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들 중의 하나다.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 아래는 주제 사라마구의 단편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

적, 사랑 이야기, 아이작 B. 싱어

적, 사랑 이야기 Enemies, A Love Story 아이작 B. 싱어(지음), 박석기(옮김), 문학사상사, 1986년(초판)(현재 절판되었음. 현재에는 아래 범우사에서 나온 것을 구할 수 있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홀로코스트를 만들었던 나치들과 유태인들은 평등하다. 신의 방관 속에서 이루어진 유태인 학살. 그래도 아이작 B. 싱어는 ‘신은 있다’(He is behind everything)고 말한다. ‘적, 사랑 이야기’는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면서 아이작 B. 싱어의 대표작이다. 한 남자와 세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등장인물들조차 혼란스럽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반양장) -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문학동네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지음), 이병애(옮김), 문학동네 길을 가다가 그녀를 만났다. 몇 해 전 봄날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먼저 자신의 피아노선생이라며, 그녀를 소개시켜주었다. 에리카 코후트. 그녀의 이름이다. 나르시시즘 연구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하인츠 코후트와는 어떤 관계냐고 묻고 싶었지만, ‘당신, 혹시 지독한 나르시스트 아닌가요?’라는 질문의 빌미가 되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생각에 그건 묻지 않았다. 삼십대 후반의 그녀는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한때 대단한 예술가적 재능을 인정받다가, 그저 그런 예술 선생, 또는 예술과..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루이지 피란델로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김효정 옮김/문학과지성사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926.(김효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민음사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 p.7 하지만 한나는 죽는다. 그녀의 사랑하던 힘이 죽고 그녀의 기억들이 죽고 그녀의 꿈들이 죽는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들로부터 떠남으로써 그녀는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그녀의 슬픈 죽음의 날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검은 날개가 눈에 익다. 우리들의 눈에 익숙한 그녀의 검은 날개. 때때로 증명할 수 없는 물음들이 우리들을 인생의 고통 속으로 빠뜨리곤 한다. 꼭 ‘넌 날 사랑하니’라는, 그 어떤 대답으로도 채워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