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38

카라바지오의 'David'

David 1600 Oil on canvas, 110 x 91 cm Museo del Prado, Madrid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미술사에 보기 드문 일자무식에 난봉꾼이었던 카라바지오는 살아있는 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는 세계는 시대를 너무 앞서서 정직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선 '정직한 삶'이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초등학교 선생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수하게 많지만, 그들은 거짓말로 가득찬 교과서를 그대로 읽어줄 뿐이라는 데에 있다. 더구나 그들도 정직하게 살아가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잠시 딴 소리를 했는데, '정직'의 기준도 시대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편이 살아가는 데에 문제를 좀 덜 일으키고 편할 ..

영풍문고에서 구입한 소더비 카타로그

고향집(* 창원)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버스 승차권을 한 장 사고는 습관처럼 영풍문고를 들렸다. 요즘 내가 찾는 책은 크리스토퍼 래쉬의 (문학과 지성사)이지만,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고 한다. 책 제목 자체가 꽤 흥미로워,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영풍문고를 어슬렁거리다가 외서 코너에서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 카타로그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두 권을 구입했다. 서울 옥션에서는 이런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보통의 화집보다 인쇄나 편집, 대부분의 면에서 뛰어난 책자였다. 홍대 앞에 헌책방에서 소더비 카타로그를 본 적이 있었지만, 얇은 책에 별 내용 없는 듯해서 무심코 지나쳤는데, 영풍문고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두껍기도 하거니와 화집과 같은 구성이..

대중과 카라바지오

바로크 예술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되는 양식이다. 이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버리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믿으며 무한한 우주에 보잘 것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예술이다. 이 인정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불안, 걱정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이후의 현대 양식), 무한한 신이 만들었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대한 기하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과 자만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이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났다. 17세기 해부학이 인기 학문이 된 이유의 배경에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한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The Age of Rembrandt - 17th Century Dutch Painting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비록 1천여점에 불과하지만, 렘브란트, 베르미르, 루벤스, 반 다이크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의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작품의 수준에 걸맞는 작품관리와 보존의 원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림 수송과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도 역시 회화 전시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낮은 150룩스 이하로 설정되었고 온도와 습도는 하루 24시간 내내 체크되어 매우 헤이그로 보고되고 있다.” - Art in Culture, 2003.9. 64쪽 하지만 너무 ..

베르미르

베르메르Vermeer, 창해 ABC북 한낮의 기온도 영도를 넘기지 못한다. 겨울이다. 추운 겨울이다. 늦은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오전 뉴스를 보면서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때때로 소란스러움도 수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종일 거리에서, 지하철 속에서, 를 읽고 보았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아주 짧은, 그러나 깊고 자욱한 슬픔의 감정에 빠진다. 이 책의 표지그림인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고 어깨 너머로 관람자를 쳐다보는 소녀의 자세는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럽’고 ‘눈동자에 반사되는 빛, 진주 속에 비친 창문의 영상, 아랫입술에 보일 듯 말 듯 반짝이는 윤기는 마치 이 소녀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 ‘소녀의 윤곽은 빛과 색채의 효과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나 이 그..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윌리엄 L.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 역사, 2001 우리는 종종 우리가 역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우리가 역사의 주체이며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시간이 지나고 감정적인 편린들이 사라지고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역사의 세계’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현재의 시간이 그 생생함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편린들의 사라짐과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는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박노자의 (한겨레신문사)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어낸 보기 드문 책에 ..

바로크와 로코코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풍경화에 대하여

*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