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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Meyney Prieur de Meyney, Saint-Estephe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지도 십수년이 넘었다. 한창 싸이월드 모임에서 활동하며, 일요일 오후 상수역 인근에서 와인카페를 하던 후배가 있어, 가끔 번개할 때가 좋았다. 와인은 부드럽고 기분 좋은 향기로, 아름다운 사람들과 근사한 음악과 우아한 공간 속에서 더 빛난다. 소주는 아무렇게나 마셔도 소주만의 강렬함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와인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배경을 신경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때론 약점이기도 하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강렬함과 깊은 향을 가지고 있으나, 그, 또는 그녀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술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짝 어둡고 무거운 공간, 두 명이나 세 명이서 격렬한 감정의 모험 속에서 제대된 멋을 부릴 줄 안다. 종종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

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ira 2015

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ira 2015 와인너리 홈페이지 : http://www.contedicampiano.it/en/ 100% 프리미티보(primitivo) 와인이다(미국의 진판델과 동일한 품종이다). 가벼우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바디감에 있어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의 풍미를 준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국순당에서 수입하고 있는 와인이며, 롯데백화점 와인샵에 가서 구할 수 있다. 소매 가격이 1-2만원대로 예상된다. 와인바에서 4만원대로 마실 수 있었으니. (저 정도의 소매가격이라면 추천한다!) (소매점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3만원 이상 한다. 와인바에서 4만원에 마신 건 행운이었다. ㅡ_ㅡ) Ma..

혼술의 My Way

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

설중매

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

초겨울 하늘 아래

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새벽 3시 고요한 더위

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모.든.것.을.버.리.고.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

어떤 수요일

몇 달 간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책상 바로 위로, 지치지도 않고 차가운 에어콘 바람은 평평한 사각형으로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구조 속에 스스로 자신을 내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몰지 않은 사람들에겐 철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인간임을 인정하라며 세상은 강요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우리를, 어떤 시스템 속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강요하면서도 그 강요로 인한 결정로 생긴 좌절, 절망, 슬픔에 대해선, 네 잘못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세계는 피해자들로만 넘쳐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밀려 지금 이..

12월 8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묻지만, 답은 없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움직여야만 한다. 설령 그게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그게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정성을 쏟는 것과 무관한 게 삶이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다. 이게 또한 삶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술이나 마셔야 하는 걸까...

패스트푸드 저녁

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