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29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를 그리워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그는 나에게 현대소설을 가르쳐 주었다. 소설론 수업이 아니라 쿤데라의 소설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형편없는 문학강사들과 평론가들은 하일지의 소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이 왜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늘 밀란 쿤데라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는, 안타깝게도 체코에서는 조국을 버리고 떠난 이방인일 뿐이었다. 의 보후밀 흐라발이 체코에 남아 그 곳에서 싸우며 글을 쓴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토니 주트는 20세기를 회고한 책에서 그의 체코 친구들은 밀란 쿤데라가 서방에서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 것에 대..

메이플소프와 패티 스미스, 1969

메이플소프의 꽃 사진이 아닌, 미국 내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을 올리고 싶지만, 아마 바로 차단당할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논란의 대상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메이플소프는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땐 신부님께 종교적 의미가 담긴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였다. 그가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워졌을 뿐. 몇 해전 시간을 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메이플소프 전시를 보러 갔다. 좋았다. 패티 스미스는 라는 책을 통해 메이플소프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 책이 번역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출간된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걸 보면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메이플소프 다큐멘터리를 보면..

내 부모My Parent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이 작가는 현대적 방식으로 원근법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원근법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교묘하게 원근법을 비틀어, 반-원근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일종의 해체. 그러나 이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화법일 뿐(그래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대 비평의 측면에서도 성공한 작가이다). 호크니의 실제 작품은 이 비평적 언어를 뛰어 넘어 아득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이 세계의 불완전함 위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스칼적 구도랄까. 우리는 세계와 싸우며, 해석하고, 저 외부 세계 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나, 세계는 우리가 자리 잡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지한 시공간과 ..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지음), 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상도터널 옆 김영삼도서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겨우 개관할 수 있었다. 텅 빈 건물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아직 책이 많지 않고 장서 분류에 따라 몇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계단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새 책이 많다는 것이 좋다. 인근의 동작도서관가 장서 목록이 묘하게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한 때 모든 걸 그만 두고 사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서가 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사소한 희망이었지만. 대부분의 취미, 혹은 사랑은 늘 마주하는 직업이 되는 순간 그 ..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좌안 1940-50, 아녜스 푸아리에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좌안 1940-50 아녜스 푸아리에(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사람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사람들 대부분 이것저것 고려할 정도로 배려심이 많지도 않고 폭넓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굳이 그럴 필요까지 느끼지 못한 채 살기 바쁘다(요즘 내 모습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이들에게 20세기를 주름 잡았던 파리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숨겨진 모습을 알게 해주는 값진 책이 될 수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지식인들의 불건전한 연애 기록으로 읽힐 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예상 밖의 이야기들로 인해 흔들렸으니...) 2차 세계 대전 전후, 점령당한 파리 좌안에서의 일상을 담고 있는 이 책에는 다행히 나치의 군인들에게 살해당하고 아우슈비츠로 끌..

'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시간의 거부The Refusal of Time>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친 호소력으로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던지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그는 195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타이트(Apartheid)에 반대한 백인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백인 사회에도 섞이지 못하고, 흑인 사회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경계에서 시작한 셈이다. 그는 경계의 자유(혹은 고독, 혼란) 속에서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짓누르는 근대 유럽의 세계관에 대해 본격적인 저항을 한다. "자신을 하나의 완성되고 균일한 한 구성체, 자아로 인정하는 서양적 논리는 만들어진 환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 윌리엄 켄트리지(출처: http:..